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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손의 귀국(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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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손의 귀국(지평선)

입력
1996.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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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세손 이구씨(65)가 25일 영주귀국한다. 비운의 왕세자 영친왕의 유일한 혈육인 그의 귀국은 10년 가까이 설이 나돌던 끝에 실현되는 것이어서 그간의 우여곡절을 짐작케 한다. 아버지 영친왕은 정치적 이유로 광복 18년만인 63년에야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의 귀국이 늦어진 것은 생계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 더욱 입맛이 씁쓸해진다.82년 주리아 여사와 이혼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특별히 할 일 없이 지내던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전주이씨 종친회를 통해 창덕궁 낙선재에 거처하게 해줄 것과 생계비 지원을 정부에 요청해 왔다. 그러나 89년 이방자여사 타계로 조선왕조의 맥이 끊겼다고 보는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종친회 총재자격으로 귀국하게 된다.

63년 영친왕 일가가 환국했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왕세자비가 일본왕과 친척이고 왕세손비는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러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던 우리는 그 현실이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피치 못할 운명임을 새삼 한탄해야 했다.

영친왕이 일본 왕실처녀와 정략결혼해 볼모로 잡혀 있던 1931년 도쿄에서 태어나 형식 뿐인 세자로 책봉된 이씨는 14세때 일본 주둔 맥아더사령부의 주선으로 미국에 유학, MIT대학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후 대학강단에도 서고 사업도 하며 고국 부흥에 열정을 쏟던 그는 결혼생활 20년이 가깝도록 자녀를 보지 못했다. 주리아 여사의 불임증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종친회측의 압력으로 그는 끝내 이혼했다.

그가 이혼과 사업실패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일본으로 되돌아간 것은 그 자신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또 한차례 수치였다. 왜 하필 일본인가. 온당한 대우를 받지못했다 해도 일시적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왕세손답지 못했다. 불행의 단초는 일제의 만행에 있지만, 이제라도 그가 긍지와 품위를 잃지 않고 고국에서 여생을 마치는게 모양새가 좋겠다.<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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