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명궁 등 4인 일대기 그려현대인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는 후기산업사회에 적응하느라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가 점점 더 없다. 한번쯤은 잠시 멈춰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러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다룬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필자가 최근에 읽은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다섯수레간)이란 제목의 소설 모음집도 바로 그런 작품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 소설집은 1940년대에 활동한 일본의 나카지마 마츠시라는 젊은 작가가 중국 역사속의 사실을 토대해서 극적으로 재구성한 중단편 소설 네편을 싣고 있다. 「산월기」 「명인전」 「제자」 「이능」 등 작품들의 공통점은 역사속의 다양한 인간상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산월기」는 당나라 시인 이징을, 「명인전」은 조나라 천하 제일의 명궁 기창을, 「제자」는 공자의 제자 자로를, 「이능」은 한무제때 비운의 명장 이능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나카지마의 소설은 주관적인 개입을 배제하고 옛날 이야기 식으로 아주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데도 공감대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소설집 제목그대로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보면 현대인의 다양한 자화상일 것이다. 일본 고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는 「산월기」는 암담했던 군국주의의 광기 속에서 겪어야 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고뇌를 감동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문단에선 「산월기」와 「이능」이 나카지마 소설의 최고봉으로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필자는 「명인전」을 감명깊게 읽었다. 천하 제일의 명궁이 되기위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예술에 인생의 승부를 거는 사람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이 작품에서 관심을 끈 것은 노장철학의 세계가 그 기창이라는 명궁을 통해 구현됐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서구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인물에게만 익숙한 나에게 지극히 동양적인 인간상을 보여준 그 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이정국 영화감독>이정국>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