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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휴진과 의료불신/조병희 계명대 교수·사회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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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휴진과 의료불신/조병희 계명대 교수·사회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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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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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의사와 약사 2,000여명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항의하여 한나절 집단휴진을 한 사실은 의료문제의 모순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번 사태의 전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4년에 걸친 한약분쟁 결과 정부는 한의계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한방정책관이라는 부서를 신설하기로 했고, 의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의보수가 인상, 의대신설 반대)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집단행동을 해 온 한의사들의 주장은 받아주어 이에 대한 항의로 집단적인 힘을 보여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이렇게 보면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집단적 항의를 하면 주장을 받아주는 정부의 무원칙한 의료행정에 있게 된다. 의사들이 사실상 파업을 강행하자 그날로 의료보험수가 인상을 발표한 정부의 태도가 이를 반증한다. 이러한 방식의 무원칙한 의료행정은 오히려 집단행동을 부추길 우려마저 낳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이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의사들이 집단휴진을 하면서 내세운 이유가 「한방정책관 신설이 의료일원화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는데 과연 의사들이 의료일원화를 위하여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의사들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를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한의학을 비과학적이라고 하여 경원시해 왔고 한방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웃나라 의사들의 경험에도 거의 무관심하였다. 결국 의사들의 반대는 명분과 달리 한의학의 지위상승으로 인한 의료체계 내에서 그들의 기득권적 지위 약화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생각된다.

의료보험 수가문제나 의대신설 문제 역시 명분상으로는 납득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외과부문의 수가가 너무 낮아 외과나 산부인과 의사들이 일할 의욕을 감소시킨다든가, 의대신설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사회적으로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 내부적으로 경영합리화나 진료방식의 개선, 그리고 직업윤리의 확립 등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최근 들어 일부 병원에서 서비스 개선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다. 병원은 아직도 오래 기다리고 불친절하고, 설명을 잘 안해주는 곳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의사들은 의료보험 수가가 낮아서 서비스 개선을 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료보험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도 병원은 불편하고 불친절한 곳이었다.

의사들은 의사수가 많고 의보수가가 너무 낮아 병원경영이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사람의 분만비가 동물의 분만비만도 못하다는 주장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기술적으로 보험외진료를 개발하여 의료를 필요이상으로 고급화시키거나 과잉진료나 과잉투약 시비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의사들의 주장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감소시킨다.

근자에 한 대학가의 서점이 높은 임대료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서점을 이용하던 학생들이 돈을 모아 서점을 부활시킨 경우가 있었다. 의사들은 의료보험 수가가 낮아서 병원 수십곳이 문을 닫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병원을 되살려야한다는 주민들의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것은 지역사회에서 병원과 의사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말한다.

의사들의 집단휴진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곱지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의사로서의 정도를 걷다가 병원문을 닫는 의사가 많아지면 국민들은 의사보다는 정부의 잘못을 탓하게 될 것이다.

잘못된 의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의사들이 토론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문제는 일과후에도 할 수 있는 것을 집단적으로 휴진하면서 하기 때문에 그 순수성을 의심받게 된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정부를 상대로 집단적인 힘을 과시하여 일시적인 성과를 얻을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 국민들로부터 오랫동안 불신을 받게 되고, 원하는 것을 다 얻기도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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