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공신력이 생명이다. 은행장은 은행의 최고경영자다. 특히 우리나라의 시중은행장들은 거액대출 등 은행경영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최고 실력자들이다.이래서 은행장은 은행의 「황제」라고들 한다. 이들 은행 최고권위의 표상들이 검찰사정의 칼날앞에 박살이 나고 있다. 은행장 개인은 공인으로서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요 그가 대표했던 은행의 공신력도 무너지는 것이다.
93년초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출부조리, 뇌물수수, 실명제위반 등 각종 비리나 불미한 사건과 관련하여 임기중 도중하차한 은행장이 이번에 구속된 손홍균 서울은행장을 포함하여 모두 15명이나 된다. 서울은행의 경우 76년 신탁은행과 합병 이후 역대 9명의 행장 가운데 8명이나 중도퇴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은행이 시중은행중 영업실적이 가장 저조하고 주가도 액면이하인 4,500원선으로 가장 낮은 것은 바로 이러한 사태의 투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들 은행장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은행장이 돼서까지 대출 커미션을 받고 부당대출을 해줘야 하는가.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협약 등에 따라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급속히 개방되고 있고 2000년에 가서는 사실상 거의 완전개방하게 돼 있다. 자금력, 영업방법, 상품개발능력, 영업조직 및 세계금융계에의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금융기관에 뒤떨어지고 있는 우리 은행들이 이처럼 내국인들에 대해서조차 공신력을 상실한다면 정말로 그들이 설 땅이 없는 것이다.
우리 은행장들의 비리에 대해서 자기변명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본인의 도덕적인 타락에서 오는 것이니 만큼 상응하는 응징을 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금융계가 환골탈태의 정신으로 자정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초인적인 도덕재무장이 필요하다.
금융기관들도 큰 사고가 있을 때마다 다른 기관에 뒤지지 않게 의식개혁을 외쳐 왔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별로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자정노력이 포기돼서는 안된다. 이와 병행해서 은행 경영체제·제도에 대한 합리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금융자본을 산업자본과 분리시키고 금융자본을 미국·일본식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한다. 옳은 방향이다. 서둘러 그 방향으로 끌고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긴요한 것은 규제완화 등 정부간섭의 최소화다. 은행장 선출에서부터 은행경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 줘야 한다. 관치금융탈피·자율금융정착은 빠를수록 좋다.
은행장의 비리와 은행의 부실은 대부분 정치권과 관련된 부정·정실대출이 직·간접의 원인이었던 만큼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금융의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 은행도 부실경영하면 문을 닫도록 하고 경영자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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