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목월의 동양화같은 시구/중학시절 어린가슴 진한 감동/시공넘어 지금도 긴 여운필자가 대전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장 즐겨 외운 시가 바로 박목월 선생의 「청노루」였다. 그때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50년대 중반이어서 전화에 시달린 국민의 정서가 대체로 불안하고 각박하던 시절인데도 이 시를 낭송하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 중에서도 「청노루 맑은 눈에/도는 구름」이란 대목은 필자가 너무 좋아하는 시구로 어린 학생의 가슴에도 「아, 시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로구나」하는 감탄과 함께 스스로 이 시의 고답적인 시어에 도취되곤 했다.
목월선생과 더불어 조지훈 박두진 세분이 「청록집」을 간행하면서 유명한 「청록파」라는 시파도 생겼는데 이 「청노루」란 시가 얼마나 좋으면 그 시파의 이름까지 그대로 이 시를 본따 청록파라고 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과연 필자의 애송시가 더욱 명시인 것은 분명한듯 했다.
필자는 시를 잘 모른다. 그러나 쓸데없이 길거나 난해한 시어로 꾸며진 것이 반드시 좋은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결하면서도 쉽게 그리고 독자에게 보다 많은 상상력과 환상, 어떤 감동을 주어야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목월 선생의 시가 대부분 그러하다. 이분이야말로 누가 뭐래도 자신의 시세계를 독특하게 일구어 지켜낸 민족시인이다.
즉 애틋하고 소박한 향토적 정취나 민족의 전통적 정서를 주조로 하는 민요풍의 시가 탁월한 민족시인임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이 밖에 「나그네」 「윤사월」 「산도화」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분의 시는 대체로 극도로 절제된 언어를 통해 객관적인 자연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시적 기교가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교감을 준다.
필자는 동국대 경주 캠퍼스 일로 자주 그곳에 가는 편인데 목월 선생의 고향이 바로 신라 불국정토의 이상이 살아숨쉬는 천년고도 경주이다. 애송하는 「청노루」에도 불교적 선미로 가득한 청운사나 자하산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시인과의 인연 또한 아주 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녕 오늘날 이 혼탁한 세상사도 청노루 맑은 눈에 비추어보면 그 얼마나 초탈한 세계로 승화되지 않을까 보냐. 이래저래 북에서는 「소월」이요 남에서는 「목월」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목월선생의 「청노루」는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나 애송할만한 시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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