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바둑에 뿌리 둔 실전 능력/자유분방한 창의력·끈기도 한몫/‘모양’의 일과 ‘힘’의 중을 제압/조훈현·이창호 등 천재의 경쟁과 조화/애호가 1,000만명·연구생·케이블TV…/‘바둑한국’ 해가 지지 않는다『한국 바둑에는 생명력이 느껴져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함과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성이 꿈틀거립니다』
「살아있는 기성」 오청원(우칭위안) 9단이 89년 제1회 응씨배(응씨배) 결승 당시 세계무대에 첫출전한 한국바둑을 평한 말이다. 그는 한국이 조만간 세계바둑을 평정할 것이란 말까지 덧붙였다.
당시 일본과 중국 기사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바로 얼마뒤 오9단의 예언은 적중했다. 조훈현 9단의 응씨배 우승을 시작으로 한국이 파죽지세로 세계대회를 석권, 일본이 지배해 온 세계바둑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조훈현 이창호 9단이 세계대회를 휩쓸자 서봉수 유창혁 9단까지 가세, 세계바둑은 한국기사 일색이 됐다.
올 들어서도 이창호 9단이 동양증권배와 후지쓰(부사통)배, TV 아시아바둑선수권, 세계바둑 최강결정전을 휩쓸었고 최근 유창혁 9단이 응씨배를 거머 쥐었다. 유9단은 응씨배에 이어 다시 한번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의전기기) 9단과 25일부터 대형국제기전인 삼성화재배 결승전을 가질 예정이어서 한국은 93, 94년에 이어 세번째 그랜드슬램을 바라보고 있다.
근대바둑 종주국인 일본과 발상국인 중국 기사들이 거꾸로 한국바둑을 연구하는 형국이다. 무엇이 「바둑 제국」의 오늘을 가져온 것일까.
기술적인 면에서 한국바둑은 「실전적인 싸움바둑」이다. 일본의 모양바둑, 중국의 힘바둑과 대조된다. 싸움바둑은 일단 돌과 돌이 맞부딪치는 난전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국제대회에서 일본과 중국의 고수들은 한국기사들의 막강한 전투력과 잡초같은 끈기에 속절없이 무너지곤 했다.
이런 전투력은 전통의 순장바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순장바둑은 미리 8점씩을 놓은 상태에서 포석없이 처음부터 전투에 들어 간다. 포석이 약한 대신 엄청난 전투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전통을 이은 탓인지 한국바둑은 이론보다 실전을 중시한다.
한국바둑은 전통과 형식을 파괴하는 창의성을 무기로 한다. 어떤 고정된 틀도 거부한다. 명인 고수가 주장한 이론이라도 자신이 경험, 검증하지 않는한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실전속의 격렬한 몸싸움과 천변만화(천변만화) 속에서 실낱같은 길을 용케도 찾아 간다. 정석을 외워 그대로 답습하는 일본식 바둑은 발붙일 곳이 없다. 정석 해체와 재발견 작업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식 정석이 유행하고 실전적인 응용 정석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바둑평론가 노승일씨. 『일본바둑은 기존 틀에 얽매여 정석과 옛이론에서 절대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전체적 흐름과 구도는 좋지만 모양과 형식미에 집착한 나머지 바둑을 지나치게 단순화했어요. 중국도 실전을 위주로 하는 바둑이지만 아직은 전투력이 떨어집니다』
최근엔 「신산」으로 불리는 이창호의 등장으로 우리 바둑의 고질적인 약점이던 종반 끝내기도 세계 최강수준에 올라섰다. 포석 중반전투 끝내기 모두가 세계 최강이다.
윤기현 9단은 한국바둑의 세계제패 요인으로 천재기사들의 등장을 꼽는다. 『천운이 따른 겁니다.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같은 천재가 동시대에 나타났으니까요』
최규병 8단은 이들 천재기사들의 경쟁과 조화를 강조한다. 『조훈현 서봉수 9단의 관록과 이창호 유창혁 9단의 패기가 잘 조화돼 있습니다. 훌륭한 팀이지요. 더욱이 경쟁을 통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어 기량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층이 얇다」는 약점도 많이 해소됐다. 정상과 중견, 신예기사들이 고르게 분포해 있고 누구든 일본 중국의 정상급 기사들과 한판 붙어 볼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창호의 등장은 세계바둑계의 주도권을 확실히 한국으로 돌려놓았고 바둑붐을 자극해 바둑저변을 크게 넓혔다. 바둑교실마다 어린이들로 가득차고 「제2의 이창호」를 꿈꾸는 어린 인재들이 기원으로 몰리고 있다. 앞서 80년대초 조치훈 9단의 일본 제패로 촉발된 바둑열기는 89년 조훈현 9단의 응씨배 우승, 90년대초의 이창호신드롬 등으로 이어지면서 폭발상황으로 이어졌다. 그에 힘입어 바둑인구도 1,000만명을 넘어섰다.
장수영 9단은 『바둑을 바라보는 일반의 인식이 바뀌고 기사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향상돼 마음놓고 바둑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흐뭇해 했다.
바둑에 대한 투자도 중·일 양국을 크게 앞섰다. 국제기전이 잇따라 창설돼 6개 대회에 상금총액이 43억 5,000만원에 달한다. 3국중 최대 규모다. 전문기사 채용과 후원금 제공 등 기업의 활발한 바둑투자와 바둑전문 케이블TV의 등장도 바둑 발전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한국바둑이 급성장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조기교육에 의한 인재양성이다. 이창호같은 바둑천재의 출현도 조기에 인재를 발굴, 양성한 결과였다. 한국기원은 30여년 전부터 연구생제도를 도입, 인재양성에 힘을 쏟아 왔다. 이창호 유창혁 등 많은 전문기사들이 연구생을 거쳐 입단했다.
김수장 9단은 힘주어 말했다. 『20살만 넘으면 더이상의 기량발전은 기대하기 힘들죠. 어릴 때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성장 속도가 빠르고 잠재력도 큽니다』
◎밖에서 보는 한국바둑/일 언론 ‘허세 버려라’ 자국기사들 질타/중 ‘한국 최강 확고’ 평가 이창호 등 연구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바둑에 대한 일본의 눈길은 최근까지도 그리 따스하지 않았다. 근대 바둑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양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이 임기응변과 승부에 강한 한국형 바둑의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아 왔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일본기원이 발행하는 월간 「기도」는 지난 8월호 특집 「일본 바둑이 위태롭다」에서 한국형 바둑을 은근히 「천한 바둑」이라고 한수 접어보며 자위해 온 일본기사들의 허위 의식을 질타했다. 『바둑은 승부이지 예술이 아니다. 한번의 패배는 용서할 수 있지만 두번째는 비웃음을 살 뿐이다』
또한 『일본 국내기전 상금이 국제기전보다 많아 국제기전을 소홀히 하게 된다』든가 『제한시간이 짧은 국제기전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등의 진단에 대해서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어 이 잡지는 10월호에서 특집으로 「세계 최강 이창호」를 다뤄 한국의 강세를 솔직히 인정했다.
일본의 간판급 기사들도 이제 한국바둑에 일단 머리를 숙인다. 「우주류」로 유명한 다케미야 마사키(무궁정수) 9단은 『빠르고 날렵하고 날카롭다』고 한국바둑의 인상을 요약했다.
전기성(기성) 고바야시 사토루(소림각) 9단은 『모양에 구애받지 않는 발상의 자유로움이 무엇보다 강점』이라며 『빠르고도 끈기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기사 킬러」로 정평나 있다 최근 응씨배(응씨배) 대회에서 유창혁에 무릎을 꿇은 요다 노리모토(의전기기) 9단조차도 『발이 빠르고 음기응변에 능해 굳건함으로 지켜가는 수 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국바둑의 강점을 인정하는데 인색했던 고바야시 고이치(소림광일) 9단 역시 『한국기사들은 일본기사와 싸울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모양』이라며 『실제로 싸워보면 기보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고 고개를 흔든다.
은근한 기세로 한국바둑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 바둑계는 일본과는 달리 처음부터 한국 바둑을 높히 평가해왔다. 국제기전이 활약의 주무대인 중국 기사들은 한국기사 못지 않은 강한 승부근성을 보이며 한국바둑의 초강세를 부러워하고 있다.
현재 중국 최강의 기사로 평가받고 있는 마효춘(마샤오춘) 9단은 『한국은 앞으로 5∼10년간 세계바둑을 지배할 것』이라며 『고르게 높은 수준에 올라 있고 10대 천재기사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쇠퇴기를 맞고 있는 위평(녜웨이핑) 9단은 『치밀한 수읽기와 빈틈없는 포석은 단연 세계최고』라며 『한국의 바둑열기는 놀랍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창호」로 불리는 상호(창하오) 7단은 『일본보다 한국바둑이 강하다』면서 『이창호 등 한국기사를 많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바둑 세계대회 발자취
세계정상을 향한 한국바둑의 비상은 89년 9월 조훈현 9단이 제1회 응씨배(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 참가, 중국의 위평(녜웨이핑) 9단을 꺾고 우승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한국바둑은 93년 국제기전을 모두 휩쓰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95년 2월 제3회 진로배 우승까지 8연속 국제기전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다. 95년 한동안 부진했던 한국바둑은 올들어 신예기사들이 성장세를 보인 가운데 다시 국제기전을 「싹쓸이」하면서 활짝 피어났다.
△89년 9월:조훈현 9단 제1회 응씨배 우승
△93년 2월:제1회 진로배 세계바둑 최강전 우승
△93년 5월:서봉수 9단 제2회 응씨배 우승
△93년 6월:이창호 6단 제4기 동양증권배 우승
△93년 8월:유창혁 6단 제6회 후지쓰배 우승, 한국 세계 4대 국제기전 석권
△94년 2월:제2회 진로배 우승
△94년 6월:조훈현 9단 제5기 동양증권배 우승
△94년 8월:조훈현 9단 제7회 후지쓰배 우승
△95년 2월:제3회 진로배 우승, 한국 세계대회 연속 8회 우승
△95년 3월:제6기 동양증권배 준준결승서 한국기사 전원 탈락
△96년 2월:제4회 진로배 우승, 한국 4연패
△96년 3월:이창호 7단 제7기 동양증권배 우승
△96년 8월:이창호 9단 제9회 후지쓰배 우승
△96년10월:이창호 9단 세계바둑최강결정전 우승
△96년11월:유창혁 9단 제3회 응씨배 우승<황영식·배성규 기자>황영식·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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