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언어 역사와 같이 자국민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과목과 수학 등 과학분야, 예술, 세계의 흐름과 관련되는 과목들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역점을 둔다는 것이다.또 하나의 공통점은 외국어교육이다. 외국어는 세계가 점점 좁아지면서 서로의 이해를 다지기 위한 기초이며, 동시에 세계 각국에서 발간하는 출판물을 신속히 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세계 각국의 고등교육기관은 외국어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 외국어 선호도는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일례로 미국은 중남미라는 거대한 지역을 가까이 둔 이유로 서반아어에 대한 선호도가 급증하고 있으며, 중남미 나라는 영어를 선호한다.
81년에 처음으로 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에 부임했을 때 나는 20여개나 되는 외국어만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이 내 근무처라는 사실에 적지않게 놀랐다. 세계의 언어가 다양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각국에서 온 교수들을 한 교정에서 만날 수 있으며, 또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접한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졸업생들이 외교관으로, 상사 주재원으로 활동하거나 서반아어권 지역에서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제2외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끼며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재삼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외국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조기 영어교육은 조금 냉철히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다. 나이가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이 빠른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한국인 틈에서 생활하는 외국어린이들의 한국어 구사력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그 경우 일부러 과외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놀이를 위한 의사소통이라는 필요에 의해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것을 하나의 학업성취라는 목표에 맞추어 공부라는 틀에 묶었을 때에는 자연스런 언어 습득은 기대할 수 없다. 자칫 자국언어, 자국문화 경시 풍조만을 확산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외국어도 잘 구사한다는 사실은 어느 언어가 더 우선되어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지표다.
며칠전 전철에서 일어난 일이다. 서너살배기 아이를 안고 탄 젊은 여성이 그 옆의 친구에게 자랑스레 하는 말이 이러했다. 『얘, 글쎄 우리 아들이 오늘 아침에 「엄마, 애플 줘」하는 거야.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길래 「뭐? 뭐 달라고?」했더니 사과를 가리키더라구. 얘가 영어 공부한 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벌써 그 정도니, 역시 외국어는 조기교육이 좋은가봐』
영어 조기교육은 한국어도 바르게 가르치려는 부모의 자세가 병행될 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한 문장 안에 섞어쓰는 사람만 양산할 위험이 있다.<한국외대 교수·서반아어>한국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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