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강남 지역 아파트 개축허가 계획을 다시 고려한다고 한다. 다행한 일이다. 월여전 베를린에 갔을때, 필자는 통일 후 숙제의 하나가 동베를린의 거대한 아파트블록처리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20년밖에 안된 아파트를 다시 짓거나 크게 수리해야 하는 현실이 동독 사회의 전면적 부실의 증표이다. 우리에게는 20년 지난 건물을 개축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 천년은 못갈 망정 백년 또는 이백년은 가야하지 않을까. 20년만에 집을 헐고 새로 짓는다면, 그래야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보다 좋은 집과 주거 환경을 원하는 것이 개축의 좋은 이유일 수는 있다. 경제 형편이 나아진 사람이 보다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아파트 개축의 동기는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고밀도화가 주거환경을 악화시킬 터인데도, 그쪽을 원하는 것이다. 이때 기준의 하나는 재산 증대이다. 부동산을 통한 재산 증대는 우리 사회의 또하나 어처구니 없는 상식이다. 이것은 지금으로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일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부동산적 사고의 여러 문제점은 우리가 경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더 중요한 기준은 생활 공간으로서의 의의다. 적정한 인간적 생활을 위한 실내 공간뿐만 아니라, 생활의 하부구조, 직장과의 거리, 공공 시설, 자연환경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비로소 공공정책이 필요하다. 주거 공간과 환경의 확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책임영역이다. 공공 주거환경 조성의 기준 하나는 아름다움이다. 서울에 처음온 외국인이 강남의 아파트 지역을 멀리 보면서 『저기가 서울의 슬럼지대이냐』고 묻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서울의 고층 아파트군이 아름다운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참으로 긴 안목에서 볼 때 아름다움은 건축과 도시계획에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이다. 물론 아름다움이 사치스러운 치장에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름다움은 근본적으로 인간적 필요와 환경친화력을 조화시킨 공간감에서 온다. 빈곤의 경제 속에서 아름다움을 너무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 사람의 첫째 희망사항의 하나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삶의 행복감의 종합적이고 공동체적인 표현이다. 오늘의 필요 충족 다음에 후손에게 전승되는 것도 이 아름다움의 행복이다.
아름다움이 사람의 건조물을 오래가게 한다. 그것이 이를 함부로 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파트를 고밀도화하면 걱정되는 것이 교통과 환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파트 구역이 그 안에서 생활의 필요와 아름다움의 욕구까지를 충족해준다고 하면, 그러한 아파트 구역은 교통과 환경의 문제를 야기하기 보다 오히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아파트 개축은 개인의 재산 증식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생각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만이 20년 밖에 되지 않은 새집을 개축할 정당한 이유이다.<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고려대>
한국일보사는 22일자부터 김우창 고려대 교수(59·영문과)가 독자여러분과 주 1회 문화이야기를 나누는 「김우창 교수의 문화칼럼」을 게재합니다.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미 하버드대에서 영문학박사학위를 받은 김교수는 평론집 「심미적 이성의 탐구」로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제4회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문학평론가입니다.<편집자 주>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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