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 비리를 위시한 부정축재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다. 광복이후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 「비리척결」 등의 용어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 그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을 느낀다. 밤낮없이 사무실 불을 밝히며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대다수 공무원의 노고가 비리공무원들로 인해 뒷전으로 묻혀버려 안타까움은 더하다. 30여년간 검사생활을 하면서 부패공직자들의 의식에 관해 고민하고 사색해 본 결과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첫째 역사적으로 상처받은 의식구조를 들 수 있다. 석학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이 타인에게 공격받거나 지배당하게 되면 배척하고 저항하는 것이 당연할 것같지만 오히려 자신을 원망하고 비하하다가 지배자를 존경하게 되고 결국은 타인을 자기화한다고 한다. 즉 35년간의 혹독한 식민지배로 우리의 주체성은 사라지고 공격자인 일본인이 우리가 되는 자기화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다수 공무원들이 무의식적으로 정부의 정당한 지시나 명령을 조선총독부의 명령으로 오인하여 거부하면서도 일본인관리의 의식을 본받아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이율배반성의 잔영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 아무리 청렴하라고 강조해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권위주의적 태도로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해 비리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혹자는 일제하에 살지 않았으므로 상관관계가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앞세대와 줄곧 관계를 맺고 살아오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둘째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섰지만 보람과 긍지에 가치를 두는 생활인의 모습보다는 먹고 살기에 급급한 생존인적 사고방식이 부정부패규모를 더 크게 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교육감선거는 물론 대학총장선거에서 억대의 돈이 난무하고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마저 「짜장면 향응」이 오가는 오늘의 현실은 배고팠던 시절, 주는 사람을 한없이 고맙게 여기던 가난의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조상들은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 못했지만 정신적 여유와 풍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척도가 되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인적 삶이 판을 치고 있다. 충분히 먹고 살 만한데도 「괄시받기 싫다」 「호화롭게 살고 싶다」 「옛 영화를 유지하고 싶다」는 이유로 몇 천억의 재물에 욕심을 내는 것도 이러한 생존인적 가치관 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보람과 긍지보다는 돈에만 매달리는 생존인의 모습, 그것이 비리공직자의 모습이다.
셋째로 「나」와 「나의 것」(나로 인한 것 포함)을 동일시하는 경향 때문에 부정부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나의 것」은 돈 명예 권력 자식 아내 부모 애인 등이다. 「나의 것」이 없어지거나 변한다고 내가 없어지거나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돈과 권력이 많아지면 기뻐하고 행복을 느끼다가도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슬퍼하며 자살마저 기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부정부패도 결국 돈 명예 권력 등을 「나」라고 착각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 가지 의식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장치의 보완과 지속적인 단속도 필요하겠지만 공직자 개인의 철저한 자기반성에 의한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깊은 고뇌와 성찰을 통해 과거역사가 남겨준 상처받은 의식구조를 치유하고 보람과 긍지라는 생활인적 가치관에 따라 「나의 것」으로부터 해방된 참다운 「나」를 발견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다. 잘못된 의식구조를 스스로 깨닫고 이를 개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만이 공직자의 존엄을 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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