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 사고 회사측선 ‘나몰라라’/초청사기 피해 1만가구 330억원/빚더미… 가정파탄 수두룩중국 선양에 사는 조선족 동포 백만복(48)·백성자(53·여) 남매는 각각 91년 12월과 92년 1월 친척초청 형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체류기간은 3개월이었지만 애초에 돈벌이가 목적인 남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백씨 남매는 건축공사장을 돌며 정말 개미처럼 일했다. 돈이 쌓이면서 이들의 코리안 드림도 영글어 갔다. 이들의 불행은 94년 8월 서울의 어느 아파트 공사장에서 김모씨(46)를 만나면서 싹텄다. 불법체류자라는 제약 때문에 직접 중국에 돈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이 불씨였다. 남매는 친할만큼 친해진 김씨에게 송금을 의뢰했다. 김씨는 1년여동안 이들의 송금을 도와 주었다.
9월20일께 남매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김씨에게 송금을 부탁했다. 이번에는 적금을 탄 1,050만원의 거액이었다. 백씨 남매는 적금을 찾아 중국에 돈을 보내기 위해 김씨와 함께 은행에 갔다. 김씨가 창구로 가 은행직원과 얘기를 나누더니 남매에게 다가와 귀엣말을 했다. 『조금 문제가 생겼어. 여기 있으면 곤란하니 먼저 가 기다려. 잘 처리하고 갈테니 걱정말고…』
그들은 평소 믿고 지내던 김씨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 김씨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백씨 남매는 이 돈을 보내고 짐을 정리해 올 연말께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막막한 상태다.
사기만이 아니다. 94년 8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지린성 출신의 조선족 서복재씨(36)는 공장에서 작업도중 중상을 입고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아직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경기 평택시 한 전자업체에 취업했으나 한달만에 안전장치가 고장난 대형회전기기에 부딪쳐 왼쪽 두개골과 갈비뼈 10개가 부러졌다.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사흘만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통원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회사의 독촉으로 35일만에 강제퇴원 당했다. 산업재해보상 대상이 아니어서 회사측에 막대한 치료비 부담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통원치료가 시작되자 회사는 병원비는 물론 교통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서씨는 아직도 오른손이 마비되고 구역질이 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면 가족들이 울먹이는 바람에 더 이상 전화 조차 못하는 지경이다.
「헤이룽장성 조선족성인직업학교」 최영철 교장은 4월 사기 임금체불 산재 등 불행을 당한 조선족 동포에게 한국정부가 살길을 마련해 줄 것을 호소하는 청원서를 보내 왔다. 최교장은 이 청원서에서 『한국 사기꾼과 임금체불 기업주를 엄벌해달라』고 요청하고 지난해 8월부터 6개월동안 접수된 사기피해 71건(3,900명) 산업재해 113건 임금체불 112건의 피해자 명단을 함께 보내 왔다. 그는 『200만원이상 빚을 지고 이혼한 가정이 부지기수이며 심지어 화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도 있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피해자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 동포 가운데 여성의 괴로움은 더하다. 불법체류라는 멍에 때문에 쉽게 성폭행에 노출된다. 조선족 장모씨(25·여)는 3월 서울 구로동에 월세방을 얻으러 갔다가 집주인 김모씨(41)한테 성폭행을 당했다. 불법체류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는 김씨의 협박에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중국노동자센터 오천근 소장(38)은 『한국인의 조선족에 대한 횡포로 소송이 벌어지면 조선족 피해자의 승소율이 98%나 된다』며 『이는 내국인이 그만큼 조선족 동포에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초청사기에 걸려 아예 한국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빚더미에 오른 조선족 동포들의 고통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초청사기에 걸려 가정이 풍비박산나고 원수를 갚으려 칼을 품고 다니는 농민, 실명위기에 처한아들의 치료비를 사기당하고 눈먼 아들을 삯바느질로 키우는 아주머니, 빚쟁이에 시달리다 자살한 외아들을 가슴에 묻고 유랑하는 할머니, 남편과 집을 잃고 정신병에 시달리는 아주머니…
최근 민간단체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상임대표 서영훈)의 중국 현지조사에 따르면 11월7일 현재 초청사기 피해는 1만여 가구, 330억원에 달했다. 신고되지 않은 피해건수를 더하면 2배인 2만여 가구, 10만여명이 직접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에게 돈을 빌려 준 간접피해자도 6만 가구,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조사보고서는 밝히고 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필리핀 여가수 로웬나/“코리안드림 절반 이뤘어요”/한국인 무뚝뚝해도 의외로 친절/5년 더 일해 근사한 집 마련 꿈
『이대로 5년만 더 일하면 필리핀에 근사한 집을 장만할 수 있어요』
스위스 그랜드호텔 테라스라운지에서 감미로운 노래로 분위기를 돋우는 필리핀 여가수 로웬나 레이보네리아(24)의 서울의 밤은 그래서 희망이 쌓여 가는 시간이다. 매니저이자 피아니스트인 레오닐로 바라위드(32)와 하모니를 엮는 혼성 듀엣 「닐로스」는 스위스 그랜드호텔을 찾는 고객들에게 친숙한 이름이 돼있다.
로웬나는 국내 400여명의 필리핀 가수 가운데 톱클래스에 드는 실력파다. 95년 2월 입국한 그는 서울 타워호텔과 호텔 롯데월드에서 인기를 모으다 1년6개월의 비자기간이 끝나 8월 출국했다. 그러나 실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스위스 그랜드호텔에 재취업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필리핀 가수들은 국내 연예프로덕션과 필리핀 현지 인력송출회사의 중개로 들어 온다. 체류허가 기간은 1년6개월. 그러나 기간 만료로 출국해 2개월이 지나면 다시 입국할 수 있다.
93년부터 필리핀 쉐라톤·플라자호텔 등 특급호텔에서 인기를 얻은 로웬나의 한국진출은 필리핀 프로덕션의 「강력한」 추천 덕분. 처음 『이국땅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망설임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일하면 훨씬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설득에 결심을 했다. 89년 고3때 마닐라 가요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가수로 데뷔한 그였기에 부모님과 두 남동생은 『한국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한국사람들은 말이 없어 무뚝뚝해 보이지만 의외로 친절해서 지내는 데 별 불편이 없어요』 아직 한국생활이 2년이 채 안됐지만 팬도 제법 있다. 호텔 롯데월드 윈저바에서 일할 때는 한 중년 팬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식사를 나눈 일도 있다.
로웬나는 월급은 한사코 밝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일반노동자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지만 호텔에서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거의 전부 저축할 수 있어요』라고만 말했다. 로웬나는 공연시간이 다 됐다고 일어서면서 『지난 1년 6개월간 코리언 드림을 절반쯤은 이뤘어요』라고 웃음지었다.
「닐로스」의 레퍼토리는 400여곡이나 된다. 흘러간 팝송에서 국내 최신가요까지 폭넓게 소화해내지 못하면 인기를 얻기 힘들다. 취재팀이 찾아간 날도 로웬나는 남성듀엣 「일기예보」의 「좋아 좋아」를 거의 완벽한 우리말로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저녁 7시45분부터 밤 12시30분까지 공연은 계속됐다.<이상연 기자>이상연>
◎남양주시 필리핀 마을/모여살며 이국땅 설움 잊는다/부부 등 400여명 달동네 단칸방 생활/월수입 평균 80만원… 힘들어도 보람
필리핀 향료 냄새와 화장실 냄새가 뒤범벅된 역한 내음. 타갈로그어 찬송가와 아기들 울음 소리. 필리핀 담배와 향료를 파는 구멍가게….
서울에서 경춘가도를 따라 달리다 마치터널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오른쪽에 남양주시 「성생가구공단」이 보인다. 200여 가구공장과 가구전시장이 들어서 있는 이곳에는 유독물질이 발생하기 쉬운 가구제조 과정의 특성 때문인지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 단지내 2,000여명의 근로자 가운데 3분의 1인 700여명이 동남아와 중국 나이지리아 등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고 그중에 필리핀인만 부부 150여쌍을 포함, 400여명이나 된다.
가구공장을 기숙사처럼 개조한 2, 3층의 허름한 건물이나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사에서 10∼15가구가 함께 산다. 보통 한세대가 3, 4평 남짓한 단칸방을 쓰지만 침대와 소파 주방기구 등은 그럭저럭 갖추고 있다. 주거 환경은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언덕배기에 닭장처럼 단칸방이 몰려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다.
이들은 공단입구에 있는 프란시스 성당을 중심으로 「필리핀 커뮤니티」를 조직해 어려울 때는 서로 돕는다. 중간 연락을 맡고 있는 로저(32)는 1월 이 성당 이정호 신부의 중매로 벨지(23)와 결혼, 연말이면 애아빠가 된다.
취재팀이 찾아간 한 필리핀 가정은 마침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고 있었다. 반지(여)의 41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남편 롬멜과 옆집 로웰 부부 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파티라고 해야 케이크 하나와 소주 한병, 콜라가 고작이지만 이때만큼은 작업장의 임금체불과 욕지거리, 불법체류자의 설움과 분노를 잠시 잊을 수 있다.
아직 이방인인 이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자주 겪는다. 9월에는 란디(23)가 범죄자가 됐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인근에 사는 한국인 이모씨(23)와 시비끝에 이씨를 칼로 찔러 구속됐다. 이씨가 『이 XX야, 너희가 뭔데 여기서 폼잡고 사느냐』고 욕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필리핀인들은 무지막지한 저임금에서는 탈출한 상태다. 보통 한달에 80만원 정도를 받고 있어 부부가 함께 일하면 월 40만원은 어렵지 않게 본국에 보낼 수 있다. 필리핀 기준으로는 큰 돈이다. 그래서 몸은 지치고 수모도 겪지만 고단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