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이든지 「대형」이 각광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같다. 냉장고 세탁기부터 자동차, 심지어 쇼핑센터에 이르기까지 대형, 초대형일수록 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어지간한 규모의 병원은 화제거리가 못된다. 1,000병상 정도의 대형병원도 그저 중간에 들 뿐이다. 무려 2,000병상이 넘는 병원이 「좋은」병원을 대표하는 것처럼 돼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사정이 이러니 너나없이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병원을 대형으로 만드는 일에 열심이다. 생겼다하면 최소한 500병상 이상이다. 알맞은 규모의 소형 병원쪽으로 가는 선진국의 흐름과는 아주 정반대인 셈이다.
큰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창 유행하는 것으로 대형 할인매장이라는 것이 있다. 들리는 소문에는 싼 맛에 욕심껏 물건을 샀다가 더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왕복 교통비, 시간비용, 쓰다가 버리는 것, 보관비용 등을 더하면 가까운 가게에서 사는 것보다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이다. 소위 「간접비용」이 많은 것이다.
욕심내서 큰 병원을 이용하는 것도 꼭 이런 모양이다. 물론 큰 병원을 이용할 때는 비용보다 양질의 진료를 기대하겠지만 비용과 질을 현명하게 비교할 필요는 있다. 진료에 드는 직접비용에 더 보태서 생각해야 할 간접비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교통비, 대기시간, 예약을 위한 추가비용과 시간, 다량의 검사등. 거기다가 짧은 진료시간, 복잡함과 번거로움, 불친절까지 비용으로 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흔히 동네 병·의원을 잘 가지 않는 이유를 시설이 뒤떨어지고 믿을 수가 없어서라고 한다. 질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동네 병·의원을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처음부터 큰 병원, 대학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말을 한다. 일종의 선입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대부분이 오해다. 요즈음 동네 병원은 옛날과 다르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기대보다 친절한 병·의원이 의외로 많다. 진료의 질도 뛰어나다. 왜 이런 곳을 두고 사서 고생하면서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가. 분명 작은 것이 알찬 경우도 많다. 의료기관의 선택만이라도 물신숭배의 늪에서 벗어나자.<김창엽 서울대 의대 교수·객원편집위원>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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