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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노동자 ‘현대판 노예’인가/12∼16시간의 중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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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노동자 ‘현대판 노예’인가/12∼16시간의 중노동

입력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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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 5만원까지 저임금/그러나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멸시·폭행·사기·임금체불…/풍요의 꿈은 멀기만 했다장시간 노동. 월 10만원도 안되는 초저임금. 멸시와 욕설. 주먹·발길·몽둥이·채찍질. 반복되는 속임수. 병들고 잘려 나가는 몸뚱이.

한국에 가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을 좇아 이땅을 찾아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통은 그들이 어렵사리 돈을 벌어 맞게 될 본국에서의 풍요로도 평생 다 메울 수 없을 정도이다.

김포공항이나 인천항에 가면 똑같은 윗옷을 입은 중국인이나 동·서남아인 200∼300명이 줄지어 배에서 내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미리 나와 있던 인솔자의 지시대로 관광버스 4∼5대에 나눠 타고 어디론지 떠나간다. 또 필리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인들이 3∼5명씩 작은 무리를 지어 김포공항을 나서는 장면도 자주 눈에 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중국인 D씨(23·여)는 칭다오에 공장을 둔 K물산의 현지법인 연수생으로 95년초 한국땅을 밟은 뒤 「현대판 노예생활」을 실감할 수 있었다. K물산은 국내유명상표의 양말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당초 회사측과 월 100달러(약 8만3,000원)를 1년단위로 받기로 계약했다. 회사는 1년이 지나면 월 150달러(약 12만5,000원)로 올려준다고 약속했다. 그는 1년동안 묵묵히 일했다. 회사측에서는 생활비 보조조차 없었다.

그러나 1년치 임금지급일이 3개월이 지나도록 회사측은 돈을 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중국인 동료 10여명과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 갔다. 그제서야 회사측은 임금을 내주었다. 그리고는 보복이었다.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못했으니 약속된 뱃삯과 3개월간의 임금은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회사측은 이미 회사를 떠난 그를 불법체류자로 경찰에 고발했다. 그는 현재 강제출국을 피하기 위해 시민단체의 보호를 받고 있다.

K물산에서의 끔찍한 생활을 생각하면 D씨는 지금도 잠을 이루기 어렵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계약상 하루 10시간씩 일하기로 돼 있었으나 회사측 요구로 2시간을 더 일하고 초과근무 시간당 300원의 임금을 받았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은 그나마 견딜 만했다.

『밤일을 할 때 야식을 준비해 주지 않아 12시간을 굶고 일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여름에는 냉수, 겨울에는 보리차 외에 먹어본 적이 없어 늘 허기가 졌습니다. 더욱이 1년치 임금이 한꺼번에 지급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주는 비누 치약 화장지 등을 제외한 다른 생필품은 살 수도 없었고 전화 한통화도 못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공장 주임과 기사들은 여자들의 엉덩이를 두들기거나 끌어안기 일쑤였고 J주임은 술만 마시면 여자들 숙소에 들어와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에 항의하면 뺨을 때리고 욕을 해댔지요』 그는 이 때문에 함께 일한 중국 여성들이 한결같이 한국남자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회한과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인도인 바트(21)보다는 나은 편이다. 산업기술 연수생으로 입국한 바트씨는 말그대로 「노예생활」을 경험했다. 천안의 J사에서 월 5만원의 임금을 받은 그는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살아있는 기계」였다. 5만원 가운데 2만원을 본국에 보내고 남은 3만원으로 겨우 목숨을 잇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3만원마저도 신협통장으로 넣어 주기 때문에 돈이 필요해도 회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외출 외박은 물론 동료들과의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국경일에도 한국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해야 했지요. 배가 고파 한국에 왔지만 막상 이곳에서는 더한 배고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외국인 연수생이나 불법체류자들이 겪는 유·무형의 인권침해는 상상을 넘어선다. 툭하면 임금체불과 폭행이다. 작업중 다친다고 해도 최소한의 치료마저 나몰라라 하기 일쑤다. 불법체류의 약점을 파고 들어 노리개로 삼는 경우도 있다. 불법체류자들이 자진출국시 출입국 관리소에 내야하는 벌금은 무형의 철조망이다. 벌금은 보통 불법체류기간 1년단위로 100만원 정도다. 불법체류자들은 4∼5년을 기계처럼 일하고 개미처럼 모아야 1,000만∼3,000만원을 벌 수 있는데 벌금으로 400만∼500만원을 내야 한다. 나가고 싶어도 쉽사리 나갈 수가 없다.

필리핀인 테르시다(39·여)는 1월 아버지가 화재로 사망한 소식을 듣고 자진출국하려 했으나 벌금 500만원을 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해 넉달동안 벌금낼 돈을 벌어야 했다.

이런 고통이 뻔한 데도 코리안 드림이 식지 않는 것은 역시 돈 때문이다. 불행은 자신을 피해갈 것이고 돈은 자신에게 몰려 오리라는 환상을 불법체류자들은 누구나 갖고 산다. 이들이 본국에서 벌 수 있는 돈은 한달에 70∼80달러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잘하면 한달에 13∼15배인 1,000달러 가량을 쥘 수 있다. 이런 임금 격차가 코리안 드림을 부추긴다.

불법체류자 가운데 더러는 한달에 100만원을 본국에 송금하며 코리안 드림의 단맛을 느끼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으로 노예같은 생활에 시달린다. 서양인을 제외하고 외국인이면 우선 한수 접고 보는 한국인들의 의식구조도 부담이다.

동남아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본국에 돌아가 혼다 오토바이 1대를 갖는 것이 꿈이다. 대개의 경우 한국에서의 돈벌이는 혼다 오토바이 1대 정도를 보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친 몸과 황폐해진 정신은 어디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제 그들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이진동 기자>

◎불법체류 원인과 대책/산업연수생제 임금구조 왜곡/입국비용 뽑으려 불법취업의 길/업체자율 고용허가제 시행 여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남의 눈을 피해 숨어살아야 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괴로운 일은 없다. 그런데 왜 합법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법망을 피해 도망쳐 나와 고단한 불법체류자의 길을 가는 것일까.

방글라데시인이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현지 송출업체에 1,160달러(약 100만원)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중소기업 협동조합중앙회가 정한 상한선일 뿐 실제 현지 송출업체는 1인당 400만∼700만원을 받고 있다. 그래도 시들지 않는 코리언 드림이 송출비를 매년 크게 밀어 올리고 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산업연수생의 월 평균임금은 57만원이다. 식비는 제외했으나 잔업·야근 수당은 포함한 돈이다. 밤샘작업 등으로 혹사당하면서 1년을 꼬박 한푼도 안쓰고 모아야 겨우 밑천을 건지게 된다. 연수생이 정해진 근무기간 2년 동안 목돈을 모으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게다가 덜컥 산업재해라도 당하면 모든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래서 불법체류를 자원한다.

불법취업자들의 임금은 보통 산업연수생보다 높다. 인력난을 겪으면서도 산업연수생을 쓸 수 없는 5인이하 사업장이나 3D업종에서 일하면 한국 근로자와 거의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불법취업자끼리 연락망을 조직, 임금을 조금이라도 많이 주는 곳을 서로 알려 주고 곧 그곳으로 한꺼번에 몰려간다.

불법취업자만을 전문적으로 알선하는 브로커들도 판을 친다. 요즘에는 100만원이 훨씬 넘는 월급을 받는 불법취업자도 늘어나고 있다. 불법취업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돈벌이 수단인 셈이다.

노동전문가들은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를 관리할 수 있는 법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산업기술 연수생 제도의 법적 근거는 법무부 훈령 뿐이다. 노동부도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이라는 예규만으로 체불임금이나 산재보상문제 등을 처리하고 있다.

20만명이라는 숫자에 비해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관리 체계다. 따라서 해당부처간의 업무영역도 모호해 질 수 밖에 없다.

시민단체들은 산업연수생 제도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대책협의회 최정규 집행위원장은 『산업연수생 제도는 오히려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임금구조를 왜곡해 불법취업자를 양산하고 있다』면서 『해당업체가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자유롭게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고용허가제 도입이 시급하다』 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를 주내용으로 하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중이고 주무부서인 노동부도 필요성을 인정한 상태다. 임금상승을 우려한 일부 업체의 반대도 있으나 인력난을 겪고 있는 대부분의 영세 중소기업은 고용허가제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월공단 보림귀금속 협동조합 정낙구 이사장은 『인력부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소규모 사업장은 고임금의 불법취업자라도 쓰고 보자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며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오히려 노동비용이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현재 산업연수생들은 기술이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업체별로 숫자만 맞춰 배치하고 있어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지자체나 공단별로 필요 인력을 자체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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