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대법관회의가 19일 의결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은 너무 늦었지만 우리나라 사법사의 한 획을 긋는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개정안중 인신을 구속할 때 판사가 피의자를 직접 심문케 해 이를 영장발부 여부의 근거로 삼겠다는 영장 실질심사제 도입은 사법제도 50년사에 처음인 훌륭한 인권유린 방지장치로 평가할 만하다.우리도 가입하고 있는 국제 인권규약에는 수사기관에 체포 또는 구금된 사람은 누구나 법관 앞에서 진술할 권리가 있다는 명문규정이 있다. 국제사회에 인권국가로 거듭 나려면 꼭 필요한 제도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구속자는 구리나 김천시 인구와 비슷한 14만4,000여명이다. 인구 10만명당 구속자수는 일본의 4.2∼4.7배, 독일의 6배가 넘는다. 그 많은 사람들의 신체적 고통은 얼마나 크며, 변호사선임료 등 재판비용의 낭비는 또 얼마인가. 구속자수가 그토록 많은 것은 우리나라의 범죄율이 특별히 높아서가 아니라, 구속수사와 구속재판의 남용 때문이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에는 불구속수사와 불구속재판이 원칙이라는 명문규정이 있다. 그런데도 구속이 남발되는 것은 법관의 영장 발부단계에서 경찰이나 검찰이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한 수사기록 외에는 구속 여부를 판단할 자료가 없어 영장 청구건수의 90%가 발부되기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 새 규칙이 시행되면 억울한 인신구속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구속기소를 늘림으로써 국가소추권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수사기관의 협조 없이는 새 제도의 이상은 실현되기 어렵다. 검찰은 벌써부터 영장 실질심사제가 급증하면 피의자 호송 계호등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같다.
검찰과 경찰은 이제 실적주의와 구속기소제일주의 발상에서 과감히 벗어날 때가 됐다. 열사람의 피의자를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한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법정신을 살려 우리도 인권선진국 소리를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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