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모국 이집트에서 외무장관을 하지 못한 것은 그가 콥트교회(Coptic Church) 신자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원주민인 콥트인을 중심으로 신도수가 약 200만인 콥트교회는 5세기께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기독교의 한 분파다.중동 이슬람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집트정부로서는 기독교인을 외무장관에 기용할 수 없었다. 갈리는 이 한을 국제외교무대에서의 활동을 통해 풀어보려 한 것 같다. 유네스코 사무국장후보로 출마하기도 하고, 아프리카통일기구(OAU) 사무국장에도 도전해 봤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기회는 뜻밖의 곳에서 찾아왔다. 5년전인 91년 자이르의 수도 킨샤사에서 열린 아프리카 외무장관회의는 유엔사무총장 아프리카후보를 결정하는 일이 의제였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총장을 아프리카에서 차지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 회의에서 총장후보로 뽑힌 갈리는 아프리카는 물론 프랑스어권, 아랍권각국의 절대적 지원을 배경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엔의 실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분쟁지역의 핵심 국가 출신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은 다른 후보를 지원했고, 총장선거는 유례 없는 열전이 됐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규정 때문에 갈리는 5년임기의 단임으로 끝낼 것을 미국에 약속하고서야 당선될 수 있었다. 지내다 보면 마음이 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약속을 깬 그의 이번 재선도전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실패했다.
우리는 아랍권과의 관계를 고려해 갈리에게 투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갈리의 재선도전은 잘못이다. 식언이 그 첫번째 잘못이고, 두번째는 미국의 협력 없이는 유엔의 기능이 마비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재선욕심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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