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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비 20조원의 나라(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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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비 20조원의 나라(정달영 칼럼)

입력
1996.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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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납입금 38%, 각종 과외비 55%, 교재비 4%, 기타 3%> 자료를 제시하고 그 자료를 글쓰는데 활용하는 방법을 묻는 문제가 13일 시행된 수능시험의 언어영역에 출제되었는데, 제시된 자료의 내용이 사교육비 관련 통계숫자(1993년 도시가구교육비 부담요인)였다.

사교육비는 여기서 수능시험 문제가 묻고자 했던 핵심이 아니지만, 우리 교육이 안고있는 최대난제인 과열입시경쟁의 극적인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수능시험의 문제에 그 과열의 대표적 현상인 사교육비가 등장했다는 점은 자못 아이러니다. 그 문제에 답을 써넣는 수험생의 대부분은 유치원이나 그 이전부터 시작해서 수능시험 직전의 「족집게」에 이르기 까지, 엄청난 사교육비부담을 그들의 부모에게 안겨온 과외세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국민이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국가가 힘들여 지출하는 공교육비 규모를 넘어섰음이 진작부터 확인돼 왔다. 94년의 경우 사교육비는 GNP의 6%를 넘는 17조4,640억원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같은해 공교육비 16조7,548억원을 51:49의 비율로 앞선 것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연간 사교육비 규모를 20조원으로 친다. 한해 국가예산의 4분의 1 이상을 공교육비로 쓰는데도 다시 그보다 많은 돈을 학부모들의 호주머니에서 꺼내야 한다. 지난 봄 서울의 한 보험회사가 직장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실태를 보면 취학전 어린이의 63%가 최소 월 20만원의 사교육비를 쓰고 있다. 3세에서 6세에 이르는 어린이들중 유아원 유치원 학원 등을 1곳만 다니는 경우는 절반에 못미치고 대개는 2곳, 많게는 3∼4곳까지 다니는 어린이가 절반을 넘는다. 피아노, 미술, 컴퓨터, 태권도, 수영에서 영어교육에 이르기까지 과목이 다채롭다. 「컴퓨터, 몇살부터 가르칠까」는 바로 19일자 한국일보 네오라이프 지면의 특집 제목이다.

초등학교에 이르면 영어 수학은 기본이고 먼 훗날 논술시험에 대비한 글짓기도 과외과목에 추가된다. 학년이 올라가면 중1과정의 예습과외도 있다. 어느 초등학교 5학년 학급에서의 조사결과 어린이 32명중 30명이 3∼4개 과목의 과외를 받고 있었는데 그중 7명은 5개 이상의 과목이었다고 한다.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고3이 고1때부터 시작된다는 건 거짓말이고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 <과외우울증> 이라고 할 정신증상이 어린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 어린이들이 청소년으로 자라서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엘 가고 사회로 나간다.

입사시험 과외도, 면접시험 과외도 없을 수 없다. 대학 6년, 인턴 1년을 하고도 4∼5년간의 전공수련을 거쳐야 응시자격이 생기는 전문의 시험에도 과외가 성행한다. 과외가 체질이 된 사회, 과외비로 한해 20조원을 쏟아 붓는 나라. 이 지구상에 이 비슷한 사회, 이 비슷한 나라가 또 있을 것인가.

문제는 이러한 사교육비를 감당하는 가계다. 중1 야구선수 아들과 초등5년 딸의 피아노교습을 뒷바라지 하던 가장이 뒷돈을 감당할 길이 없자 자살했다는 4월의 서울 방학동 사건은 예외적인 특이사례만은 아니다.

「뒷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남이 하는 만큼 나도 하자면 두가지 「방법」이 나온다. 빚을 지거나, 사회의 부패구조에 고리를 걸치거나.

그러잖아도 한국사회를 특징지우는 몇가지 불가사의 가운데는 「가계 미스터리」가 자리잡아 왔다. 수입보다 엄청나게 많은 지출이 그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끝간데 모를 과다지출 항목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불가사의는 사교육비다.

개혁은 먼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서민의 생계를 과외비부담에서 해방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개혁의 시작도 없다. 사회 구석구석에 얽히고 설킨 부패구조를 들어내고 씻어내는데 뜻밖의 지름길이 될는지 모른다. 「생계형 부패」는 사회의 부패구조에 감염되는 첫번째 고리이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개혁이 절실하다.<본사 상무이사 겸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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