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전화를 걸어 국악에 대해 묻는 층은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단답형의 답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좀 내용이 길어질 양이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 내용을 팩스로 받아보고 싶다』는 층도 적지 않다.며칠 전에는 『저, ○○대학교 학생인데요. 오늘까지 교양과목으로 신청해서 듣는 국악개론 숙제를 해야 되는데, 「수제천」에 대한 자료를 좀 팩스로 받아 볼 수 없을까요』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급한 사정이야 짐작되지만 대학생이 과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치고는 너무도 비학구적이라는 생각에서 몇 가지 참고도서와 음향자료를 일러주고 스스로 해결할 것을 권한 일도 있다.
뿐만 아니다. PC통신 동호회 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무슨무슨 주제로 리포트 써낸 적이 있는 분」을 찾는 이들을 적지않게 마주치게 되고, 또 학교에서는 컴퓨터 디스켓에 저장된 여러명의 과제물을 재구성하여 마치 「3분 요리」하듯이 리포트를 작성하는 학생들도 수두룩하다고 들었다.
정보의 신속한 유통은 공부하는 이들의 시간을 엄청나게 벌어준다. 원전 자료를 베껴쓰느라 팔이 저리고 눈이 뻑뻑해지는 경험 대신, 어디에서 어떤 자료를 퍼 올릴 것인가하는 정보사냥꾼다운 감각이 더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복사기도, CD롬도, 세계로 열려있는 통신망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민첩한 정보사냥 훈련이 지나치게 잘된 덕분일까? 주변에서는 원시자료를 얻어다 그것을 어떻게 가공할까 탐색하고 고민한 끝에 고유한 완성품을 만들어 내기보다 「반가공」 혹은 「완전가공」상태의 물건을 선호하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마치 자동판매기에서 나오는 물건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구하듯 원하는 지식을 즉석에서 제공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떻게 답을 주어야 할까. 답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끌지 않고서는 너나없이 지식의 자동판매기로 퇴화하는 것은 아닌지,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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