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불법총기류 10만여정/두목급 권총·방탄조끼 소지/중국 등서 사격연습 첩보도「폭력조직간의 영역다툼이 총격전으로 번진다. 상대조직 보스의 암살과 이에 대한 보복이 이어지고 무고한 시민이 엉뚱하게 날아 온 총알에 맞아 피를 흘린다. 폭력조직은 공권력에까지 총을 들이 댄다」
미국이나 홍콩의 갱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장면은 이제 우리에게도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니다. 한발 한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경기·인천지역의 폭력조직이 총기밀매에 손을 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내사중』이라며 『이들이 소지한 총기는 대부분 22구경 소총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일선 단속기관의 진단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난달 인마살상용 사제권총 4정을 복제한 일당 5명을 적발한 부산지검 강력부 박종순 검사와 부산시경 강동섭 강력계장은 『조직 재건이나 세력 확장을 노리는 폭력조직에 이미 총기가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 조직이 어떤 종류의 총기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이 폭력조직의 총기무장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불법총기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폭력조직 간부들이 방탄조끼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도 중요한 방증이 되고 있다.
당국은 현재 전국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10만정의 불법총기가 유통되거나 감춰져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도시는 물론 농촌·산간지역에 이르기까지 밀수 또는 복제 총기가 없는 곳이 없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부산시경의 한 관계자는 『시내 택시기사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운전석 밑에 권총을 넣고 다닌다는 첩보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전국적인 총기의 범람으로 보아 폭력조직의 무장은 이미 개연성 차원을 넘어섰고 이를 방증하는 증언과 사례도 많다.
올해초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심야에 산책중이던 30대 여성이 소리없이 날아든 22구경 소총 실탄에 둔부를 맞아 부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소음기가 장착된 소총을 사용했을 것이란 당연한 추측만 있었을 뿐 누가 어디서 총을 쏘았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사건이 공개될 경우의 사회적 충격을 우려, 이를 미제사건으로 덮어둔 채 쉬쉬하고 있다. 당국은 이 사건을 폭력배가 관련된 치정사건으로 보고 있다.
불법총기의 주고객인 밀렵꾼은 대부분 폭력전과자들로 상당수가 조직원일 공산이 크다. 부산을 무대로 한 대규모 폭력조직에 몸담았던 K씨는 『어느 조직이든 최소한 두목과 중간보스들은 총을 갖고 있다』며 『무섭다』고 말했다. 또 지방에서 총포사를 운영했던 Y씨는 『부산 인천 등 항구도시에서는 조직폭력배가 친인척 등 제3자를 법률상 영업주로 내세워 총포사를 열어 놓고 이를 조직의 총기공급 창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않다』고 귀띔했다.
93년 부산에서는 한 폭력배가 술에 취한 채 권총을 꺼내 자랑하면서 『조직의 중간간부 이상은 러시아 선원으로부터 단체로 구입한 권총 1정씩을 나눠 가졌다』고 떠벌렸다는 정보가 나돌아 경찰이 수사에 나선 적도 있다. 지난달 밀수총기 판매상 2명을 적발한 광주지검 특수부 위재천 검사는 『국내 폭력배들이 중국 등지에서 사격연습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혀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일부 폭력조직이 총기 밀매에 관여하는 것을 물론 외국 폭력조직과 연계, 직접 총기밀수에 손대고 있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기밀매가 워낙 은밀히 이뤄지는 데다 그동안 당국의 수사체계 미정비로 폭력조직의 총기무장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법망에 걸리지 않았다. 경찰은 『심증은 있는데 실체가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당국이 올들어 총기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수사체계를 갖춰 감시를 강화하자 용의선상에 오를만한 기존 유명조직들은 재빨리 꼬리를 감춰버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기도 하다.
반면 중소도시에서 혈연과 학연을 매개로 결성된 소규모 신흥 조직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감시망을 틈타 적극적으로 밀매에 나서고 있다는 첩보가 잇따라 입수되고 있으나 역시 조직의 결속력과 배타성이 강해 좀체 단서가 잡히지 않고 있다.
폭력조직이 총기를 확보해 놓고도 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엄격한 총기범죄 처벌 규정을 1차적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안기부 관계자는 『총기에 관한한 꼬리가 잡히면 조직전체가 와해된다는 심리적 부담에서 총기사용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범죄집단이 총기를 갖고 있는 이상 사용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당국의 우려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조직의 사활이 걸린 급박한 상황이라면 어느 집단이든 총을 사용할수 밖에 없을 것』 이라며 『이렇게 물꼬가 한번 트이면 폭력배의 속성상 총기사용이 봇물터지듯 확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유성식 기자>유성식>
◎어느 총포상 인터뷰/“60%이상이 불법무기 취급 추정”/윈체스터·K2·러시아제 소총까지 팔아/밀매조직·폭력배 타인 내세워 영업하기도
『전국 총포사의 60% 이상이 밀수총과 개조총 등 불법무기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대구의 어떤 총포사는 지하실에 비밀아지트를 갖추고 개조총과 권총, 미제 윈체스터소총은 물론 러시아제 소총과 국군의 K2소총까지 팔고 있어요』
서울에서 6년째 총포사를 경영하는 박모씨(38)가 폭로하는 우리나라 불법무기 유통의 현주소는 심각하다. 『선명한 인상을 구매자들에 심기 위해 총포사의 99%가 한번쯤은 총기를 불법 개조한 적이 있을 겁니다. 불법무기를 취급하지 않고는 총포상들이 절대 적자를 면할 수 없어요. 전국 1,000여개소의 총포사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불법 총기류 유통에 손을 대고 있다고 봐야지요』
불법무기는 총포상들에게는 젖줄같은 존재다. 공기총을 개조한 총은 150∼200만원에 팔 수 있어 그냥 공기총을 파는 것보다 2배 이상 수지가 맞는 장사이다. 고성능 외제총의 경우에는 1천만원을 호가해 1정만 팔면 몇개월을 버틸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제 밀수총 소개 사진과 목록을 가지고 다니며 총을 밀매하는 총기상도 있다. 김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서울의 한 총기상은 무기목록으로 월 수천만원대의 거래를 하고 있으며 미국에 안정적인 밀수루트까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박씨는 『한국사람은 총에 대한 동경심이 의외로 큰데다 고성능 소총을 권유하는 총포상의 농간에 말려 들어 불법무기를 사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사냥철을 2, 3개월 앞둔 9∼10월에 불법무기가 널리 유통된다고 증언했다.
일부 총포상은 전문밀매조직의 하부 판매책으로 외제총과 실탄 밀매를 알선한다. 그러나 이들은 밀매조직원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대개 친분관계로 연결돼 있고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박씨는 일부 총포상은 지역의 조직폭력배들과 선후배 관계 등으로 맺어져 있어 아예 총기물색과 공급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총포상의 자질도 문젭니다. 총포사의 40%정도는 법률상 영업주와 실질적인 주인이 다릅니다. 전과가 있어 자격이 없는 사람이 타인명의를 빌려 영업을 하기 때문이죠』<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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