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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왜 치나?/조두영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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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왜 치나?/조두영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화요세평)

입력
1996.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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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두개골 패는데서 유래했다는 골프는 본능적 공격성 분출/심리적 신분상승감과 숲·풀 회귀소망 충족탁 트인 공간, 맑은 공기, 돈독한 교제가 곁들여지면서도 재미가 있는 운동은 골프뿐이 아니다. 그런데도 골프는 대한민국 중상류층에 선풍을 타듯 번지고 있으며 심심찮게 공을 놓다 심장마비로 비명횡사했다는 사람들 이름이 들려온다.

골프, 왜 이리 번지나? 우리에게는 특히 그럴만한 심리적 이유가 있음직하다. 첫째는 운동 모두에서 그러하듯 본능적 욕구의 승화 때문이다. 즉 본능적 욕구가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자타에 혐오감을 주기 보다 그럴듯하게 남들이 용납하는 방법을 통해 방출되어 긴장이 풀린다는 이유다. 「적군 두개골을 때려 패는데서 유래하였다」는 골프는 우리의 공격성 방출을 도와주고 있으며, 빨래방망이와 다듬이 방망이가 가정에서 사라짐과 때를 같이 해 허전해진 주부들이 골프채를 잡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골프채란 정성껏 두 손으로 고이 잡는데서, 손아귀에 들어오는 감각과 굵기에서, 그리고 끝이 무겁고 두툼하게 생겼다는 의미에서 남근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풀밭을 걸어가며 대개는 『열아홉번째 홀』이라든가 『무슨 시리즈』같은 성적 농담과 해학을 집단으로 즐기는 재미가 있는 것이니, 그래서 성적 욕구가 간접적으로 쉽게 충족되고 풀린다.

두번째는 심리적 신분상승감 때문이다. 한 때는 고관대작과 재벌, 그리고 미국군 장교들만의 운동이어서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대열에 동참하게 된 뿌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괴상한 영어인 『굿 샷!』이나 『나이스 샷!』을 서로 외쳐주는데서, 「예절」이라는 우리 말 대신 꼭 「매너」라는 서양말을 서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데서, 당자가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약속시간에 나타나야 되며 「못치는」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골프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데서 오는 서양화된 비밀결사에의 소속감이 계층상승감을 부채질한다. 더구나 다른 운동과 달리 젊고 당당한 체격을 가지지 못했어도 흉이 아니니 달려들기가 수월하다.

셋째 이유는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온 농부 기질이 몸 마디마디에 배어 있어서이다. 숲과 풀밭, 그리고 「골탕 먹으라」는 물 웅덩이는 골퍼에게 그리운 산천초목 정경을 제공한다. 모 심고, 피 뽑고, 김 맬 때는 허리 펴지 못하고 아래만 보았었는데 이제 코치에게서 듣는 『잘 치려면 절대 머리를 들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또 공 때리고 나서도 팔과 채를 계속 앞으로 지쳐나가 척 어깨 위로 뻗어 올리는 동작은 옛날 논밭에서 『훠이!』하고 새 쫓던 동작이나, 낮은 데서 높은 데로 농업용수를 퍼 올리던 몸놀림과 흡사하다. 그리고 두 번 들르는 그늘집 간식은 영락없는 농번기 곁두리며, 네 명이 횡렬로 풀밭을 걸으며 하는 담소란 나란히 밭고랑을 타고 앉아 희희대던 조상들 모습과 비슷하다. 머리회전은 무엇에서건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농사짓던 몸놀림에는 국민 대다수가 이력이 나 있어서인지, 요사이는 도시 근교 농촌에도 골프연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골프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도시민의 농경사회 회귀소망을 다소나마 충족시켜 주고 있다.

네번째 이유는 골프가 혼자 하는 운동으로서, 집단으로 모여 힘을 내기 보다는 개인으로 힘을 내는 것에 더 익숙한 우리 특성에 맞기도 해서이다. 막상 하는데는 단체로 호흡을 맞출 필요가 없는 운동인 골프는 나오는 점수도 개인이 들인 시간과 정성에 비례한다. 그래서 모든 결과가 남의 탓이 아닌 「내 탓」인데. 이 점이 개인주의가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의 적응차원에서 우리 골퍼에게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줄 공산이 크다.

얼마전까지 혹시 이수성 총리가 떼를 써 김영삼 대통령에게서 공무원 골프장 출입가능 언질을 받아내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대접골프에서 오는 민폐와 부정부패 가능성을 차단하자는데 금지이유가 있음은 물론이나, 내 생각에는 지기 싫어하는 김대통령이 등산과 수영을 좋아하는데도 이유가 있을 법하다. 즉 산행에서의 일렬종대에는 앞자리가 있지만 골프장 일렬횡대에는 그것이 없으며, 물속에서는 고개를 자주 들어야 하는 대신 골프에서는 마냥 숙여야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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