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경제협력회의(APEC) 총회를 계기로 열릴 한·미·일·중 연쇄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고조와 관련, 연일 협박·공갈을 공언하여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무장공비 남파를 희석, 사태를 반전시키고 특히 3국의 공조를 교란시키려는 속셈이 분명하다.북한의 위협전술은 매우 집요하다. 처음 잠수함 침투를 「훈련중 표류」 운운하다가 우리측에 「천배백배 보복」을 연발하고 국제적 파장이 심상치 않자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노동미사일 1호 발사실험 호언에 이어 이번에는 제네바 핵합의를 파기, 핵개발재개를 위협한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명백한 시인·사과 및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는 한 경수로 지원은 물론 경제협력 등을 일체 중단하겠다는 한국에 압력을 가하고 나아가 한·미간을 이간시키려는 의도가 틀림없다. 그 뿐인가.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의 성명을 통해 경협을 중단할 경우 자위권인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직접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협박에 대해 한·미양국이 시각차를 보이고 있음은 안타깝기만하다. 우리측은 핵개발재개 협박은 제네바합의 이후 고비때마다 있었던 상투적 수법으로 이번 경우 공비침투로 인한 궁지를 벗기위한 술책에 불과한만큼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태도는 아리송하다. 처음 한국과 같이 레이니 대사와 로드 차관보 등도 시인, 사과를 강조했고 핵개발위협에 아직 그런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일축했다가 페리 국방장관이 이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페리 장관의 반응은 곧 「핵개발 재개」를 협박이 아닌 「가능성」으로 평가하겠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이어 미 행정부에서 「한국의 강경자세는 긴장만 고조시킬뿐」이라는 견해에 이어 뉴욕타임스는 강경정책은 김영삼 대통령이 통치권 강화의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고 한 것은 너무나 큰 시각차다. 이러한 미국측의 대북유연자세에 일본도 슬그머니 동조하려는 눈치여서 문제가 더욱 어려워져가고 있다.
정부는 이번 한·미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핵합의로 경수로와 중유 등을 받은 최대의 수혜자인 만큼 결코 파기할 뜻은 없으며 핵개발 위협은 한국의 강경책에 압력을 가하고 3국공조를 교란하려는 것임을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형식적인 유감표명」으로는 결코 안되며 분명한 사과와 적어도 한반도 평화안정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도록 한 목소리를 관철해야 한다. 이는 공비침투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또 거액의 경수로비용을 부담하는 한국민의 최소한의 요구인 것이다.
만일 이번 사건을 적당히 넘길 경우 제2의 무력도발과 핵개발위협·공갈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이번 대미·대일정상회담은 정부의 외교력과 대북정책을 가늠하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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