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 조치가 물건너 갔다. 재경원은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 한국통신 등의 민영화를 미루는 명분으로 재벌에 대한 특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원래 민영화를 추진하려고 했던 출발점을 생각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둘 아니다.재경원은 실효성있는 전문경영인 제도를 자리잡게 함으로써 공기업의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민영화에 따라 손해를 보는 이익집단들, 이를테면 잎담배 농가, 정치가와 관련 공무원, 공기업 경영인과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편이 정치적으로 훨씬 유리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세상살이에는 늘상 때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사이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한 마디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 비교적 잘나가는 영국과 뉴질랜드란 나라를 보자. 온 나라가 규제로 꽁꽁 묶이고 공기업 경영의 폐해가 도를 넘어서서 실업과 성장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강력한 개혁을 시도하게 된다. 나라 경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야 민영화와 규제완화라는 개혁이 추진되게 된다.
이것도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거릿 대처와 로저 더글러스라는 나라의 앞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깨어있는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정치적인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국민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라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 아무도 내일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오늘의 환심과 갈채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가나 관료를 가진 나라는 필연적으로 막다른 골목까지 가고야 말 것이다. 미리 미리 준비할 때만이 막대한 비용을 치르는 위기를 피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좋은 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사이 한국기업의 경쟁력 하락이 주요한 사회현안이 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 하락은 기업이 몸담고 있는 사회전체의 효율성과 직결된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임금 이자 지가 물류비 어느 것 하나 이 땅에는 유리한 것이 드물다. 고비용 구조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곳곳마다 담합으로 인한 비용이 숨어있다. 농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항만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유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앞세우면서 특정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 사회의 곳곳에 숨어있는 담합지향형 입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고서는 우리들의 경제적인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공기업 민영화 조치의 포기도 예외가 아니다.<한국경제연구원 자유기업센터장>한국경제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