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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가 본 최수철의 ‘맹점’(다시 읽는 한국문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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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가 본 최수철의 ‘맹점’(다시 읽는 한국문학:2)

입력
1996.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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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도 볼 수 없는 곳 삶의 태반이 숨어있고…/‘맹점’을 만났을때 내 가슴속 문학물길을 찾을 수 있었다나는 최수철씨의 등단작인 단편소설 「맹점」과 두번 마주쳤다. 그리고 그 짤막한 소설은 두 번 모두 나를 감동시켰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맹점」과의 첫번째 조우는 1981년 신년 벽두의 한 신문 신춘문예에서였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그때의 기억은 웬지 얼음처럼 투명하다. 아마도 그때 지면에 실려있던 당선작가가 나보다 겨우 두살밖에 많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나는 문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상과대학 학생이었다. 하지만 문학이란 비유하자면 지층 밑을 흐르는 물길과 같다. 그 물길의 흐름을 감지한 사람은 쓰든가 읽게 된다.

그때 나도 그랬다. 문학에 종사하려는 뜻은 가지지 못했지만 열심히 읽는 사람이었다. 「맹점」을 다 읽고 났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감동이 되어 있었다. 이제 겨우 스물세살밖에 안된 사람이 이토록 인생을 꿰뚫고 있다니, 하는.

「맹점」에는 병근이란 이름을 가진 신문사 사진기자가 등장한다. 매우 평범한 인물인 그는 문득 개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드디어 말끝마다 『개 같다』라는 말을 갖다붙이게 된다.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것이면서도 실상은 자조에 다름아닌 「개 같지 뭐」 「개 같은 수작이야」 「개 같은 자식」이라는 말의 던져짐은 그러나 그 저의가 친구들에게 포착되어 오히려 그의 이름에 빗대어 『병근이 같다』라는 말로 조롱까지 받게 된다.

소설은 시종일관 주인공 병근의 위태로운 자의식의 행로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듯 정확하고 치밀하게 그려낸다. 잘 놀라고 놀란 뒤에는 성스럽기까지 한 고통의 표정을 짓는 게 매력으로 느껴져 사랑하게 되었던 여자가 알고 보니 심장병 환자였다는 얘기 등은 참으로 서늘한 것이었다…. 그리고 온 힘을 기울인 그의 마지막 시도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 그는 바싹 타들어간 입술로 『개 같은』이라고 중얼거리고, 소설은 끝난다.

소설은, 그리고 그 소설의 작가는 한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어떤 암시도 하지 않았지만, 『개 같은』이라는 그 자조의 읊조림은, 1981년 벽두에 내뱉어지기에는 매우 위험스런 외마디에 다름아니었다. 그때는 이미 낮고 음울한 한 조각의 냉소가 거대한 외침을 대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때였다.

그래서 내가 처음 마주했던 「맹점」은 80년 전후의 시간을 다룬 한 뛰어난 알레고리 소설이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병근은 당연히 그 시대의 허약한, 고민으로 가득찬, 분열된 자의식을 형벌처럼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우리 자신들이었다.

「맹점」과의 두번째 만남은 그 소설이 맨 앞에 놓여있는 최수철씨의 첫번째 작품집 「공중누각」이 출간된 1985년, 어두운 겨울이었다. 한해 전 군에서 제대를 하고 대학 복학을 일년간 미룬 채 골방에 처박혀 책만 읽어대던 시절이었다. 비로소 나는 문학의 길로 접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나는 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최수철씨가 얼마나 많은 진지한 작품들을 생산해 내고 있었는지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감탄의 시작은 여전히 「맹점」이었다. 눈을 뜨고도 우리가 볼 수 없는 사각지대, 놀랍게도 거기에 인생의 태반이 숨어있었고, 우리는 마냥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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