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7년, 동서독이 통일된지 6년이 되었다.우리는 독일통일을 한반도와 비교하면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것이 「통일비용」 문제이다. 독일은 1990년부터 5년간 국가재정의 약 1조마르크(약 550조원), 즉 연방정부 연간 예산의 25%씩을 동독지역에 투입함으로써 93년에는 마이너스 경제성장, 95년에는 1.9% GDP 성장, 재정적자의 증대, 약 400만명을 육박하는 전후 최대의 실업자(실업률 10.2%) 등, 막강하던 독일경제가 휘청하는 모습이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이런 출혈을 하고서도 동독지역은 아직도 낮은 생산성과 「이등 시민」의 열등감 등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통일 이전 사회주의 경제의 모범으로 불리던 동독을 흡수한 비용이 이정도라면 매년 5% 이상씩 마이너스성장을 계속하면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북한과의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할 경제적 부담은 막대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비용문제는 결국 통일의 「결과」에서 도출된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리 경제를 보다 튼튼히 하는 것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독일 통일의 「과정」이 주는 교훈이다. 첫번째로, 주변국과의 관계이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경우는 미국 영국 프랑스 구소련 등 전승국들이 통일문제에 관여할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콜 서독수상이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은 바로 독일통일에 대한 이들의 의심과 두려움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그는 독일의 통일이 「유럽통합」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논리로 주변국을 설득하였다. 우리의 경우에도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이 비록 법적 권한이 없더라도 나름대로의 계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려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북한을 중국 사회주의 체제와 민주체제 사이의 완충지대로 유지하고자 한다는 가설도 성립한다.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두번째로, 독일통일과정은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콜수상은 원래 아데나워 전수상의 뒤를 이어 처음부터 친미노선을 표방했지만, 특히 동독의 동요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된 초기부터 미국의 부시 전대통령과 수시로 연락해 가면서 모든 전략을 협의했다. 서독의 입장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단순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끼리의 지원이라는 차원을 넘는, 두 나라 지도자와 정책입안자 사이의 긴밀한 관계와 끊임없는 협의과정이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서독은 소련의 방해와 영국 프랑스의 견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까.
최근 한미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이 들린다. 대북정책을 두고 우리는 미국이 너무 유화적이라고 비난하고, 미국은 우리가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강경책을 쓰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두나라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북한이라는 난처한 대상을 다루다보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종종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미 양국의 국가이익에서 보나 언젠가 닥쳐올 상황의 긴박성에 비추어 보나 이런 갈등의 반복·증폭은 매우 비생산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끊임없는 대화와 접촉이며 양쪽의 지도자, 정책관계자, 실무자들 사이에 항상 대화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간의 신뢰가 구축될 것이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1년이상 앞두고도 벌써 이른바 대권후보들의 이야기가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다음 대통령의 임기중에 남북관계에 중요한 상황전개가 가능하다고 볼 때, 이들중 누가 우리의 주변국에 대해 통일한국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설득하면서 필요할 때는 이이제이의 기술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안으로는 폭발하는 국민의 정치적 에너지를 제어, 소화하면서 밖으로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훌륭히 관리할 수 있는 슬기와 배짱, 기술을 갖춘 사람, 이것이 대권후보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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