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영원한 적일 수 밖에 없나/페미니즘 논쟁 불붙었다/이혼과 간음이 성공·반란으로 미화되고 무소뿔처럼 혼자가라니/갈등의 모태는 가족관계/전통적 남존여비 질곡이 더이상 여성 삶일 수 없어논쟁다운 논쟁이 없었던 근간의 문단에 희귀한 형식의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의 형식은 소설이다. 주제는 페미니즘.
당사자들은 소설가 이문열씨와 이경자씨.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48년생 동갑나기다.
이문열씨는 계간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장편소설 「선택」 2회분을 발표했다. 이경자씨는 계간 「실천문학」 겨울호에 연작소설 「사랑과 상처」 1회분을 발표했다.
「선택」은 3백년전 조선시대 인물인 정부인 장씨가 화자로, 오늘날 「웅녀의 슬픈 딸들」에게 자신의 한살이를 회고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다. 「사랑과 상처」는 올해 71살의 「내」가 1932년부터 가족사를 회고하는 이야기다.
사실상 먼저 사단을 만든 이문열씨는 「선택」 2부 「자미화 그늘 아래서」에서 서론격인 「세상의 고달픈 아내들에게」를 통해 정부인 장씨의 입을 빌어 말한다.
『…다행히도 바람의 방향은 바뀌었다. 전 시대의 억압과 질곡은 끝나고 여성들은 제도 속에 매몰되었던 자아를 찾아냈다. 이제는 누구도 이 세찬 흐름을 되돌려 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를 보는 이 마음이 기껍지만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른바 페미니즘 소설 등을 목표로 한 이씨의 칼은 『나도 너희들 중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너희의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정신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하고 수줍어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거리 가득 울려퍼지는 것은 천박한 복수의 구호이거나 벌거숭이 이기주의의 전파열 뿐이다』고 몰아친다.
이문열씨는 이미 「선택」 1부 중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에서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며 여성 작가들의 특정 작품을 들면서 『어쨌거나 굳세고 용기 있는 여인들이지만 그들을 시대의 선구자로 인정하기에는 웬지 망설여진다』고 공격한 바 있다.
이경자씨는 「절반의 실패」와 「황홀한 반란」의 작자. 그는 이문열씨처럼 정공법을 택하진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의 실제 사례들을 취재하고, 그것을 「사랑과 상처」에서 소설화했다.
다만 소설을 시작하며 여자 화자의 입을 빌어 『너무 많은 고통들 때문에, 그것과 익숙해지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나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기억들의 느낌은 명백하게 「분노」이거나 「서러움」이다』라며 전통적 남존여비의 질곡이 여인들에게는 삶 그 자체였다는 것을 드러내려 한다. 이씨의 소설은 연작 형식으로 80∼90년대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계속될 예정.
평론가 황광수씨는 이경자씨의 소설에 대해 『일부 페미니즘 소설이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분리시킨 뒤 공격성만 드러내려 하는 것에 비해 「사랑과 상처」는 남존여비라는 문제를 토속적 정서로 그려내고 있다』고 평했다.
이경자씨는 『내 소설은 「우리 사회 갈등의 원형 또는 모태는 가족관계」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미 지난해부터 썼던 것이며 「선택」에 대한 반박을 위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선택」은 서문만 읽었지만 이문열씨의 시각이 사회의 자연스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문화 각 분야에서 페미니즘이 최대의 의제로 떠오른 지금, 이 「소설 논쟁」의 귀추에 문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창작과 비평」 겨울호는 특집으로 「근대성과 페미니즘의 기획」을 마련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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