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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무대에 오른 중년남성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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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무대에 오른 중년남성 절망과 희망

입력
1996.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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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남 모노극 ‘중년의 남자에겐 미래가 없다’/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 ‘아름다운 거리’중년은 쓸쓸하다. 죽어라 뛰어왔지만, 언제부터인지 직장이나 집에서 겉돌기 시작한다. 전쟁통에 태어난 이들을 기다린 것은 가난, 군부정권, 월남전, 사우디의 건설바람 등이었다. 이제야 숨 좀 돌리려고 하지만, 명예퇴직 바람이 거세고 가족, 친구도 하나 둘 등을 돌린다.

서성거리는 중년의 풍경을 그린 연극 2편이 무대에 올랐다. 조명남 모노드라마 「중년의 남자에겐 미래가 없다」(김행호 작, 황남진 연출), 「불 좀 꺼주세요」의 명콤비 이만희(작)·강영걸(연출)이 모처럼 만난 「아름다운 거리」.

두 편 모두 조용히 중년층 관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중년의…」는 올초부터 우리 사회를 휩쓴 명예퇴직 바람에 흔들리는 중년의 우울한 내면풍경이다. 50대 후반의 심오한씨는 잘 나가던 방송작가. 갑자기 원고요청이 끊기자 심오한씨 앞에는 메울 수 없는 빈 원고지만 남는다. 아내도 통 말을 안하고 지방대 다니는 외아들마저 무시하는 눈치다. 하루종일 소주병을 끼고 사는 그에게 유일한 외부와의 소통은 전화.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방송국 연출자마저 명예퇴직후 이민간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아내는 사라진다.

퇴물 방송작가의 참담한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는 무려 2,000여편의 CF에 목소리를 빌려준 성우출신의 조명남. 산울림소극장의 「심판」이후 7년 만의 무대다. 30일까지 문화일보홀. (02)736―2575

절망의 끝에 다시 희망이 있는가. 「아름다운 거리」는 상처받은 50대 두 남자의 수채화같은 사랑과 우정을 보여준다. 안광남(유영환)과 민두상(김주승)은 50대 동갑내기. 고교 동창인 이들은 둘다 결혼에 실패하고 부도로 직장도 잃어버린 신세. 민두상의 사진관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아웅다웅 다투며 하루 5,000원씩 일수돈 찍는 재미로 살아간다. 빚더미에 시달리던 둘에게 갑자기 행운이 찾아온다. 안광남의 택시 주행계가 7만7,777㎞를 통과하는 날, 8,300만원이 든 돈가방이 굴러들어온 것. 이혼한 아내 고이랑(성병숙)에게 손을 벌릴 만큼 쪼들리는 상황이지만 돈을 파출소에 갖다준다.

드라마 「형제의 강」으로 활동을 재개한 탤런트 김주승이 오랜만에 출연하는 연극무대. 왁자지껄하면서 서러움과 정겨움이 엇갈리는 연극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공연기간도 롱런을 자신한 듯 내년 4월30일까지로 잡았다. 대학로극장. (02)764―6052

희한한 것은 연극을 본 30대나 40대나 50대나 서로 「내 이야기」라고 말한다는 점.

「중년 남자」라는 새로운 관객층을 흡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소리가 있다. 우리 연극계에는 중년의 배우도 없지만, 중년의 관객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박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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