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홍정선 교수 ‘문학과 사회’에 기고/시인 원작 훼손한 교정/시대상황에 꿰맞춘 해석/‘빈곤한 시적 상상력’의 원죄「빈곤한 시적 상상력」의 원죄는 고교교육일까. 대학교수가 우리나라 고교 국어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나섰다.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 (문학과 지성사 간)에 수록된 인하대 홍정선 교수(국문학과)의 「고등학교 문학교과서를 통해 본 우리 문학 교육의 현주소」는 부끄러운 우리 시교육의 현실을 꼼꼼히 들춰내고 있다.
홍교수는 우리의 시교육이 시인의 원작을 훼손할 정도에 이른 오자나 오류에서부터 시를 정치, 시대적 상황에 꿰맞추어 해석하는 해석단계의 잘못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오류에 빠져 있으며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이 빈곤한 상상력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고교에서는 국정교과서인 국어와 시중 출판사들이 펴내는 검인정 문학·작문·독서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데 국정교과서와 저명한 교수들이 편집한 검인정 교과서 모두가 한결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의 시어를 잘못 교정하거나 원전이 확실치 않아 교과서마다 작품이 다르게 나타난 것, 때로는 현대어로 표기법을 바꾸거나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꾸면서 시어는 물론 해석의 오류마저 유발하는 등의 사례가 일일히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허다하다.
김광균의 「설야」에는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금성교과서 상권 94쪽) 라고 수록돼 있는데 여기서 찬란한은 「차단한」의 오기. 이 시인은 「와사등」에서도 「차단-한 등불이 비인 하늘에 걸려있다」고 표현, 「차단한」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조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육사의 「광야」는 45년 발표될 당시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렷스랴」로 표기됐으나, 사투리 「어데」가 표준말 「어디」로 바뀌면서 의미의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학계에서는 『부정의 뜻을 가진 「어데요」 「어데예」 등의 예로 보아 「어데」는 「닭우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주장이 일기도 했었다. 따라서 「어데」는 표준어로 함부로 고칠 수 없는 핵심적 단어였지만 아무 생각없이 쉽게 고쳐버림으로써 해석상의 논란까지 유발했다는 것이다.
설명과 해석의 오류는 더욱 심각하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육사의 「광야」, 정지용의 「향수」 등 일제시대 전후에 쓰여진 모든 시들을 모두 「일제에 항거하는 우국충정을 드러낸 시」라는 식의 애국주의적 경향으로만 해석함으로써 모든 시 정서를 객관적 상황과 연결시키는 도식적 사고방식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일제시대의 시를 「저항시」, 김수영 신동엽의 시는 「참여시」, 정지용 김소월의 시는 「서정시」라는 식의 규정 역시 문학적 넌센스라고 지적됐다.
홍교수는 『현행 교과서는 분명 개선이 시급하다. 하지만 무작정한 개편이 아니라 교육적 틀에 대한 진지한 토의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있는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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