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축하인사와 아울러 미국의 한반도 정책수립에 고려돼야 할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 입장을 전하는 글임을 밝힙니다.최근 들어 한미양국은 대북지원 문제를 놓고 표면적으로는 공조를 취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북한으로부터 잠수함 침투 사건에 대한 사과와 유사한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야지만 대북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미국은 「잠수함 사건에 한국이 과잉 강경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경수로사업 등 대북지원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한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이같은 인식은 잠수함 사건에 대한 우리의 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께서 잘 알고 계시듯이 한국의 서울은 휴전선에서 불과 4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서울에는 남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약 1,20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유사시 서울이 북한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한국은 4분의 1의 인구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한국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기능이 서울에 집중돼있는 한국만의 특이한 현실 탓입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인들은 언제나 북한이 서울로 기습적인 도발을 해오지 않을까하는 불안속에 살고 있습니다.
북한잠수함이 심야에 동해상에 출현했고 탑승 무장병력들과 우리 군이 약 두달간 전투를 치른 상황을 우리는 도발의 한가지 형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장공비들과의 교전은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 뿐만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가슴에 두려움과 분노를 안겨 주었습니다. 한국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번 전투로 「가슴에 자식을 묻은」 부모만도 수십명이 됩니다. 이외에도 「혹시나 내아들이…」하는 초조·불안감으로 전투기간에 지옥의 나날을 보낸 어머니와 아버지는 140여만명에 달합니다. 군문에 친척이 가있지 않은 한국인이라고 가슴졸이지 않았으며 무모한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분노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점에서 북한잠수함과 탑승공비는 「내 피붙이의 가슴에 총구를 겨냥한 분명한 적대 세력」입니다. 비록 그들도 개인적으로는 체제의 희생자로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고 동정할 수는 있지만 그들을 내세워 도발한 북한정권은 쉽사리 용서할 수 없다는게 우리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과와 재발방지의 약속없이 대북지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몇년전 한국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책은 독도를 침공한 일본을 남북이 힘을 합쳐 응징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처럼 남북의 하나됨과 협력가능성을 꿈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화해와 선린의 관계를 바라는 한국인의 가슴을 찢고 있는 것은 바로 북한입니다. 미국은 분명히 이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이런 우리의 정서를 한반도 정책수립에 고려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2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이 회담이 한미양국 간에 놓여진 간극을 메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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