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파는 주부서 폰섹스업체까지/그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바람이 분다. 사회가 바람에 휩싸여 있다.
대낮에 러브호텔이 붐빈다. 주부가 돈과 쾌락을 좇아 몸팔이에 나선다. 가정을 가진 생면부지의 남녀가 짝을 맞춰 여행을 떠난다. 사이버 공간에는 얼굴없는 남녀의 농익은 애욕의 대화가 흐른다. TV와 영화는 바람을 포장해 팔기에 바쁘다.
건장한 남자의 사진과 특장점을 담은 「젠틀맨 카탈로그」가 서울 강남의 유한부인들 사이에 나돈다. 「제비방」이 등장하고 폰섹스 전문업소인 「텔레폰 클럽」도 상륙했다. 이 바람의 시작과 끝은 어딘가.
「애인 이성친구 데이트파트너. 마음이 따스한 여인. 오늘 만나세요. 당일 주선. 여성 무료」
결혼중개업소 간판을 걸고 은밀히 매춘을 알선하는 탈법적인 이벤트회사와 기획사들이 생활정보지 등에 게재한 광고 내용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S이벤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소장으로 보이는 30대 중반의 남자 1명과 여직원 1명이 「짝 찾는」 남녀를 맺어주느라 분주했다. 2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책상 2개와 전화기 4대, 자그마한 소파 2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통화를 끝낸 소장은 흥정이 잘 됐는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던 기자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소장은 고객을 가장한 기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 보더니 말을 건넸다. 『초혼입니까. 재혼입니까』
한동안 머뭇거리다 『아직 미혼인데 데이트를 할 수 없느냐』고 딴청을 피웠다. 속셈을 재빠르게 알아 차린 소장은 『아, 그러세요』 라며 기자 앞으로 몸을 숙였다. 『스무살부터 40대까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을 해드릴까요』
그때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이구 O사장님. 아직 못만나셨어요. 분명히 그 커피숍으로 간다고 했는데. 기다려 보세요. 다시 연락해보겠습니다』 소장은 수화기를 놓자마자 여직원에게 소리쳤다. 『OOO씨 빨리 찾아봐. 삐삐쳐』 여자에게서 금방 연락이 왔다. 소장은 여자를 다그치는 듯했다. 『지금 어디 있어요. 기다리고 있잖아요. 부근에 커피숍이 두 군데 있다고요. 인상착의는 아시죠. 빨리 가세요』
소장이 전화에 바쁜 동안 사무실 내부를 힐끔힐끔 둘러 보았다. 책상위의 조그만 책꽂이에는 20대 30대 40대 50대 등으로 구분된 파일이 나란히 꽂혀 있었고 책상 위에는 5∼6개 시중은행의 계좌가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 계좌로 소개료가 입금된 것이 확인되면 바로 전화나 호출기로 남성 고객에게 상대 여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장은 기자와 흥정을 계속했다. 웃음띤 얼굴로 「물건」을 내놓고는 은근히 눈치를 살폈다. 『젊은애들이 낫죠. 직장에 나가는데 스무세살짜리는 화끈하고, OO대 OO학과에 다니는 대학생도 있어요』
그의 말은 돈만 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반응이 시큰둥했던지 재빨리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연상은 어때요. 이혼녀도 있고 주부까지 있어요』 그리고는 말끝을 흐렸다. 『괜찮은 주부를 만나려면 일찍(상오에) 오는 것이 더 좋은데…』
남성고객이 여성을 소개받는 대가는 5만원부터 20만원까지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방이 약속장소에 안 나오거나 만나자마자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소장의 대답은 엉뚱했다.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에요. 섭섭하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술 한잔 하세요. 분위기 잡는데는 역시 술이 최고지요. 한번 즐기시려면 10만원 내지 20만원 쥐어주면 돼요』 노골적인 소장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전화벨이 또 울렸다. 『어이구 사모님』 『…』 『연하로 해드릴까요. 지금 여기 젊은 사람이 와있는데』 『…』 『조금 연상이 좋으시다고요. 그러죠 뭐. Ⅹ시로 약속을 맞추죠』 수화기를 놓은 소장은 여직원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OOO씨한테 빨리 삐삐쳐 봐』
기자가 『사람이 없으면 다음에 오겠다』 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소장은 『번거롭겠지만 은평구 OO동까지 갈 수 있느냐. 거기에는 이혼녀와 주부가 몇명 있는데…』라고 유혹했다. 이 이벤트사는 영등포와 강북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33세의 가정주부 C모씨가 기자에 「배정」됐다. 소개료 5만원을 소장에게 건네고 C씨와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적은 메모지를 손에 넣었다. 이날 하오 6시 약속장소인 P레스토랑에서 C씨를 만났다. 투피스 차림으로 나온 그는 결혼 6년째이고 애는 없다고 했다. 갸름하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5, 6개월전 생활정보지를 보고 호기심에서 연락해 일하게 됐어요』 『연락은 삐삐로 하는데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삐삐를 꺼놔요』 『(파트너를)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남편요? 사업하는데 지방출장 갔어요』 『심심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돈도 필요해서…』
처음 뭐든 할 수 있을 듯한 태도이던 C씨는 기자의 잇단 질문에 의심스런 눈치를 보이더니 한마디 톡 쏘아 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데이트하자더니 무슨 조사하러 왔나요, 집에 일이 있어 빨리 가야겠어요』
수요일 하오 2시 경기도 장흥 유원지의 야트막한 언덕 위의 한 러브호텔. 여성 운전자가 몰고 온 그랜저승용차 한대가 호텔입구로 들어섰다. 차문이 열리고 점퍼차림의 40대 후반 남자가 내렸다. 낮술을 한잔 한듯 비틀거리며 먼저 내려 주차장에 있는 차 높이의 녹색 번호판 가리개를 들어 승용차 번호판을 가렸다. 이윽고 키가 작고 통통한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차에서 내려 먼저 호텔로 걸어 들어가고 남자가 뒤를 따랐다. 조금 뒤 호텔 2층 창문이 스르르 열렸다.
20분 뒤 역시 그랜저승용차 한대가 언덕쪽으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남자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양쪽으로 동시에 내려 선 남녀가 웃음을 주고 받으며 호텔 안으로 여유있게 들어갔다. 이들과 엇갈려 흰색 티셔츠를 입은 덩치 좋은 30대 남자가 호텔 밖으로 나왔고 까만 투피스 차림의 30대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섰다. 상오에 호텔로 들어간 남녀인 듯했다.
이날 하오 3시30분까지 1시간 반동안 모두 6쌍의 남녀가 이 호텔로 빨려 들어 갔다. 하오 4시30분께 호텔로 들어갔던 쌍들이 차례차례 뒷문으로 나와 차를 몰고 느긋하게 호텔을 빠져 나갔다.
낮시간에 붐비기는 서울 시내의 호텔과 여관도 마찬가지. 서울 명동 인근의 한 여관. 평일 점심시간 20대 여성 1명이 뒤를 흘낏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바바리코트 사이로 살짝 유니폼 자락이 보였다. 5분여가 흐른 후 감색 정장차림의 50대 신사가 종업원에게 방번호를 물은 뒤 2층으로 올라갔다. 종업원은 『같은 회사 상사와 부하직원이 미리 약속을 하고 온 것 같다』며 『낯시간에 인근 회사 동료인듯한 남녀가 찾아 오곤 한다』고 말했다.
◎에리히 프롬의 진단/바람은 ‘권태로부터의 도피’/결혼후에도 연애감정 환상땐 사랑 잃어
20년전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결혼 이후의 바람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결혼은 상대방의 육체와 감정, 관심의 독점을 가져다 준다. 결혼으로 사랑은 하나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에 부부는 더이상 상대방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권태를 느끼고 아름다움이 사라진 상대방에 실망한다. 상대방이 변한 원인을 찾으며 속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들은 이미 서로 사랑할 때의 모습이 아닌 자신을 깨닫지 못한다. 결혼을 통해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결과적으로 사랑을 빼앗아 간다는 사실은 더욱 알지 못한다. 이제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대신 그들이 가진 것, 즉 돈과 사회적 지위, 가정, 자식 등을 함께 소유하는 데 안주한다. 부부가 지난날의 연애감정을 되살리려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을 때 부부의 어느 한쪽은 새로운 파트너가 자신의 소망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환상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싶어하는 것이 오직 사랑뿐이라고 느낀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사랑에 실패하며 결국 지나치게 수동적이 돼 권태에 빠지고 마침내 자신의 남은 매력조차 모두 잃어 버린다. 바람을 피는 것은 한 사람만을 사랑하기 보다는 여러 연인을 소유함으로써, 또 항상 새로운 자극으로 권태를 치료함으로써 우선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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