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제공하는 익명의 데이트/공개대화방서 비밀방 그리고 첫 만남/‘마음속 간음’은 어느새 현실의 외도로…미혼인 회사원 L씨(31)는 9월 초순 서해안 바닷가의 한 횟집에서 30대 주부 P씨를 만났다. PC통신 「30대의 방」에서 만나 2개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은 사이였다. P씨는 모대학(지방캠퍼스) 교수 부인으로 자녀 2명을 두고 있었다.
몇차례 「만남」이 거듭되면서 두사람은 이내 비공개 대화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무대가 옮겨지고서도 한동안은 평범한 내용에 머물렀다. 그러나 L씨가 호기심에서 던진 「진한」 농담에 P씨가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순순히 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날이 갈수록 대화의 농도는 짙어져만 갔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 쑥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매일밤 뜨거운 대화를 주고 받았다. 얼마후 P씨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서 한번 만나자고 먼저 제의해 왔다. L씨는 휴가를 내 약속장소로 내려갔다. 현실에서 처음 만난 날 저녁 두사람은 현실공간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P씨는 『PC통신을 통해 이런 식으로 만난 사람이 두세명 된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L씨는 『처음에는 야릇한 상상과 기대 속에서 그 사람을 만났지만 실제로 일이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런 기회가 닥치면 누구든 선뜻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L씨의 경험처럼 이미 우리사회에도 「사이버 불륜」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이버 섹스는 미국에서 처음 사회문제가 됐다. 올 2월 뉴저지주의 한 유부녀가 PC통신망의 가상공간에서 만난 남자와 사이버 섹스를 즐기다 남편에 들켜 이혼법정에 서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망에 들어가 보면 「30대 중반만 환영」 「외로움에 찌든 아줌마를 위하여」 등 이상야릇한 가상공간을 만나게 된다.
성인전용 대화방에서는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싶다』 『당신의 알몸을 보고 싶다』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언어의 유희를 대할 수 있다. 곳곳이 유혹의 지뢰밭이다. 철저히 자신을 감출 수 있는 PC통신의 익명성이 사이버 섹스란 독버섯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상상력만 있으면 다소의 현실성이 가미된 「마음속의 간음」 을 즐길 수 있다. 더욱이 얘기를 나누다 맘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둘이서 비밀방을 따로 만들어 끈적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L씨의 경우처럼 이를 진짜 밀애로 이어갈 수도 있다. 만남과 헤어짐도 즉흥적이다. 싫으면 바로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물론 PC통신 이용자들이 모두 사이버 섹스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전용 대화방에서 자주 음담패설이 튀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조크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데이콤 부가통신사업본부 마케팅과장 백동환씨는 PC통신의 건전한 효용성을 보다 강조했다. 『이용자의 양식문제라고 생각합니다. PC통신망에서 이뤄지는 남녀의 만남은 아직까지 대개는 건전해요. PC통신으로 만나 결혼에 골인한 미혼남녀들도 수백쌍이나 됩니다. 건전한 성인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결혼정보서비스 제공업체도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사이버 불륜에 빠진 이용자는 그의 말대로 아직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화가 급진전, 온라인 생활이 보편화하고 주부들의 PC통신 이용이 일상화할 경우 사이버공간이 불륜의 새마당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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