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돼 아이들 입학문제로 이곳의 공립 초등학교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디렉터」라며 학교를 방문할 날짜와 시간을 일러주었다.불어사전을 찾아보니 디렉터는 부장 국장 교장 등의 뜻을 갖고 있어 전화통화를 한 사람이 설마 교장은 아니겠고 교무주임쯤으로 생각했다. 약속된 날 아내와 함께 학교에 찾아가 디렉터를 만났다.
학교현관 모퉁이에 두 평 가량의 조그만 방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던 50대의 디렉터는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었다. 그는 가족사항, 한국에서의 학업관계 등을 서류에 직접 받아적은 뒤 학교소개도 상세히 해주었다. 수속을 마치고 나오면서 아내가 『교장선생님 같다』고 하길래 나는 『교장선생님의 방이 그렇게 초라할 리 없고 시시콜콜한 일을 직접 보겠느냐』고 일축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보니 그는 교장선생님이었다. 1년쯤 지나 우리는 아이들을 좀더 가까운 학교로 전학시켰는데 이곳 교장선생님의 역할과 인상도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며칠전에는 아이가 학교에 공책 한 권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숙제를 하려면 공책이 당장 필요해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시 학교에 가서 공책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자 크게 낙심했다. 마침 늦은 시간까지 교내를 순찰하던 교장선생님이 사정을 듣고 교실로 들어가 공책을 찾아 주었다고 한다.
이 교장선생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학부모들과 얼굴을 대한다. 프랑스에선 초등학교 4학년까지 보호자가 반드시 아이들의 등·하교길에 동행하도록 돼 있다. 이 시간에 교장선생님들은 교문 앞에 직접 나와 학생들을 지켜보고 학부모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자녀문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한다.
교장선생님들은 교내 일에도 열성적이다.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크고 작은 일을 직접 챙기느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학생 개인의 학업상황 등도 훤히 알고 있다. 담임교사가 1차 작성하는 전교생의 생활기록부(성적표)를 일일이 검토, 직접 종합평가를 한다. 교장선생님의 자필로 빽빽이 메워진 자녀의 생활기록부를 받아보면서 『교장선생님의 이상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학교란 이렇게 해야지 학부모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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