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노씨 퇴정요청 재판부서 수용/피고인 출입문앞 “잠깐 조우” 끝나다행인가, 불행인가. 역사의 소용돌이 핵심에 있던 전직 대통령 세 사람이 한 법정에서 얼굴을 맞대면 무언가가 밝혀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오랜 관심은 순간적으로 끝이 났다.
14일 상오 10시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 재판장인 권성 부장판사의 호명에 따라 하늘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이 법정에 들어섰다. 굳은 표정이었지만 약간 상기된 듯 했다.
『증인 최규하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겠습니다』 권부장판사가 증인 출두를 알렸다. 이 순간 전피고인의 변호인인 석진강 변호사가 손을 들어 발언기회를 요청했다. 『두 전직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으로, 한 명의 전직대통령은 증인석에 서는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든 헌정사의 가장 비극적인 상황』이라며 두 전직대통령의 퇴정허용을 요청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의견을 묻자 전·노 피고인은 굳은 표정으로 『변호인의 건의에 동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재판부의 퇴정명령이 떨어졌다. 전·노 피고인은 피고인 출입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 때 최 전대통령은 출입문밖 복사기옆 의자에 앉아 대기중이었다. 문을 나선 두 전직대통령은 최 전대통령과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다. 불과 1m도 안되는 거리였다.
입정을 기다리면서 생각에 젖어 있던 최 전대통령은 갑자기 문이 열리자 고개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전·노 전대통령과 눈이 마주쳤지만 두 사람은 바로 앞 피의자대기실로 들어갔다.
한 법원 정리는 『최 전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서기 수분전까지도 고개를 숙인채 만감이 교차하듯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며 『갑자기 두 전직대통령과 눈만 마주쳤을 뿐 목례조차 나눌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법정에 들어선 최 전대통령은 법정 정면의 「법원」상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지만 무거운 입을 열지 않았다. 재판부의 거듭된 호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과 변호인단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고 방청석에서는 약간의 웅성거림이 일었다.
석진강 변호사는 휴정시간에 『지난 주말 면회를 갔는데 전 전대통령께서 「어차피 증언할 바에야 정리에 얽매이지 않고 심경을 피력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 퇴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팡이를 짚고 퇴정하던 최 전대통령은 재판부와 방청객을 향해 두 번 고개를 숙였다.<이태희 기자>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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