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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영원한 ‘딴따라’/윤복희 ‘열정과 혼’ 무대인생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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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영원한 ‘딴따라’/윤복희 ‘열정과 혼’ 무대인생 40년

입력
1996.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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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은 재능… 잇단 파경/힘들었던 삶에 그의 끼는 더욱 빛났고/돈·인기와는 너무 먼 무대에서 죽고싶은 진짜 프로한때 그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노래했다.

「니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께/ 니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이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나는 너의 형제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여러분」중에서)

7세 때 처음 무대에 올랐던 그는 43년 간의 생을 꼬박 무대에 바쳤다. 그에게 무대는 고통이자 위로, 서러움이며 기쁨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원한 친구이자 형제였다.

그가 노래한 무대는 물론이고 인생의 족적 또한 한국의 대중문화 반세기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윤복희(50). 그는 12월6일부터 시작하는 40주년 기념공연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연습에 빠져있다. 지독한 감기 몸살에 시달리면서도 마치 데뷔하는 자세로 손짓 몸짓 하나에 혼을 쏟아붓고 있다. 선후배들이 40주년 공연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내가 뭐라고…』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다 선후배들이 마침내 그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들고 나오자 승락했다.

「빠담 빠담 빠담」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삶과 사랑을 그린 창작뮤지컬. 거리의 가수 출신이라는 불우한 역경을 딛고 노래에 대한 열정 만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에디트 피아프는 윤복희와 닮았다. 당대를 풍미한 선남들과의 거침 없는 만남과 헤어짐도 그렇다.

피아프와 윤복희, 두 사람은 우리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진짜 딴따라」라는 점에서도 꼭 닮았다. 돈이나 인기에 연연하는 오늘날의 만들어진 스타가 아닌 무대에 목숨을 건 「딴따라」. 윤복희의 40년 무대인생은 「딴따라」라는 꼬리표를 달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우리 대중문화의 지난 얼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딴따라요? 제가 「딴따라」로 불릴 만한 위인이 되나요』라고 되묻는다.

윤복희가 무대인생을 일구어낸 토양은 전쟁의 상처를 달래주던 정서적 분출구이자 한국 대중문화의 불우한 출발이던 유랑극단이었다. 「부길부길악극단」을 만들었던 악극인 윤부길이 그의 아버지였고, 악극단의 스타 무용수 고향선이 어머니였다.

악극단 출신의 부모는 축복이자 멍에였다. 흔히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딴따라」의 피를 물려준 대신, 어린 그를 홀로 세상에 내던져 버린 것이다.

동경제국음악학교 출신의 엘리트와 천대받는 유랑극단의 「딴따라」라는 간격을 메우려 아편에 손을 댄 아버지는 그 수렁에 빠져 세상을 뜨고, 어머니마저 유랑극단을 따라 전국을 떠돌다 무대 위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딴따라 윤복희는 끔찍한 세상살이를 겪으며 미8군 쇼무대로 진출했다. 어지러운 6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로인 그 곳에서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을 만났고 세계 무대로 나갔다. 춤, 연기, 노래가 하나로 어우러진 「진짜 딴따라」는 라스베이가스 무대까지 누비게 됐다.

67년 21세의 처녀 윤복희가 무릎 위 20㎝까지 올라오는 초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국대중문화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문화충격이자 사건이었다.

하지만 TV가 안방을 점령하고 대중문화의 전도사로 나서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윤복희는 오히려 주춤한다. 운명의 두 남자, 유주용, 남진과의 거듭된 이별이 다리를 잡기도 했지만, 「노래따로, 연기따로」의 절름발이 딴따라 노릇이 도무지 성이 안찼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무대는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캐츠」 등 수많은 뮤지컬 무대에서 억제할 수 없는 「끼」를 마음껏 발산했다.

윤복희는 결코 편안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다. 간단치 않은 인생역정 때문이기도 하고,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을 내던져 영혼을 쥐어짜듯 온몸을 흔들며 토해내는 노래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첫사랑의 연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발이 편하다」는 이유로 평생 버선만을 고집해온 단순한 사람이다. 10여년 동안 미국생활을 했으면서도 커피는 입에 대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버스나 지하철만 타고 다닌다. 심지어 미니열풍을 몰고 온 자신의 미니스커트에 대해 『당시 사랑했던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했을 뿐』이라고 엉뚱하게 설명한다. 남다른 우정을 나누었던 강효실의 부음을 듣고는 연습 도중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았다.

『40년 무대라고요. 나는 아직 데뷔도 안한 것 같은데요. 도대체 노래가, 무대가 뭔지…. 정신 없이 노래부르다가 무대 위에서 죽고 싶어요』 12월6일 윤복희는 다시 한번 「데뷔」한다.<박천호 기자>

◎40년 기념공연작 ‘빠담 빠담 빠담’/에디트 피아프 인생 그린 국내 뮤지컬 효시/77년 초연… 당시 멤버 등 선후배 대거 출연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은 국내 뮤지컬의 효시. 1977년 현대극장에서 초연 당시 노래와 연기가 한 무대에 선보이는 뮤지컬의 출현을 놓고 연극계에서는 「연극이냐, 아니냐」는 논쟁까지 벌어졌다. 당시 현대극장이 붙인 공연이름은 「샹송 드라마」.

백승규 극본, 표재순 연출의 이 무대는 곽규석, 이석, 추송웅, 조명남 등 스타들이 총출연, 이듬해까지 앙코르무대를 올리는 인기를 누렸다. 그후 78년, 82년, 86년까지 네 차례나 현대극장의 단골레퍼토리로 무대에 올랐고 임동진 서승현 정동환 이치우 이호재 양재성 김진태 김갑수 등 연극계의 쟁쟁한 스타들이 거쳐갔다.

극단 유인촌 레파토리와 현대극장 등이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무대에는 초연 당시 멤버였던 표재순(연출), 유경환(기술감독), 최창권(음악), 이순재, 임동진 등이 다시 모였다.

어제의 용사들처럼 윤복희 40주년 기념공연을 위해 모여든 이들은 『20여년간 고생하면서 친해진 사이라 눈빛만 보아도 호흡을 맞출 수 있다』고 말한다.

레퍼토리는 「빠담 빠담 빠담」을 비롯, 「장미빛 인생」 「낙엽」 「사랑의 찬가」 등 귀익은 상송 10여곡.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과 슬픔을 가슴으로 열창하는 윤복희의 연습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윤복희가 오십줄에 들어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12월6∼15일. (02)3444―0651∼4, (02)762―6194

□약력

46년 서울 출생·50세

7세때 서울중앙극장 무대에서 연예 활동 시작.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한양여고 2년에 편입

서라벌예대 입학후 곧 중퇴.

63년 4인조 보컬그룹 「코리언 키튼즈」 결성, 라이스베이가스에서 활동.

67년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 「웃는 얼굴 다정해도」로 국내 가요계 데뷔.

69년 가수 유주용과 결혼하고 도미. 4년만에 헤어짐.

77년 가수 남진과 결혼. 2년 후 결별.

77년 「빠담 빠담 빠담」으로 뮤지컬 데뷔.

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윤항기 곡 「여러분」으로 대상 수상.

76년부터 개신교 귀의, 독실한 신앙인으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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