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는 비밀 핵무기연구소가 2개 있다. 하나는 우랄산맥 남쪽 예카테린부르그에서 80㎞쯤 떨어진 곳에 있는 첼랴빈스크 연방핵연구소이고, 다른 하나는 모스크바에서 동쪽 320㎞ 지점에 위치한 아르자마스 핵물리학연구소다. 러시아 핵무기의 대부분이 이 두 연구소에서 개발되고 생산됐다.지난달 31일 그중 하나인 첼랴빈스크연구소의 소장이 권총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연구소 직원 1만6,000여명의 임금체불과 연구·운영자금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고민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이 그의 유서에 의해 밝혀졌다.
그는 다섯달이나 밀린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변통해 보려고 백방으로 뛰어 다녔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장경제 개혁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외채와 만성적 자금부족 때문에 군 장성의 70%를 전역시키고 핵무기를 폐기하는 마당에 핵연구소만 무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자살하던 날 직원들의 손에는 지난 5월치 월급으로 단돈 50달러(약 4만원)가 쥐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할 일은 이들의 몰락한 신세가 아니다. 이처럼 궁지에 몰린 핵연구소 요원들이 테러단체나 북한 이라크 리비아 같은 깡패국가의 유혹에 넘어가 그들의 첨단 핵기술이나 소형 핵탄두를 팔아 넘길 위험이 있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과 유럽은 이런 사태를 막아 보자고 91년부터 핵연구소 운영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중간에 부패한 러시아 관리들이 개입해 자금을 유용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연구소 직원들의 사정은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핵물질을 빼내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막판에 가서 연구소 자체가 와해되는 사태가 닥칠 경우 이들이 살기 위해 무슨 일을 벌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현지 보도들은 전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산된 핵무기를 러시아군이 관리하고 있고, 그 군대가 지금 거의 통제불능이라고 할만큼 조직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권총이나 소총은 말할 것도 없고 기관총이나 로켓포 같은 중화기가 군대에서 흘러나와 암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옛날얘기다. 러시아 선원들이 부산을 통해 우리나라에 무기를 밀반입하고 있는 것도 오래된 얘기다.
옐친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체첸반군이 그처럼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 이유도 러시아군대의 무기팔아먹기 덕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정부의 예산지원을 제대로 못받은 러시아군은 훈련도 장비도 먹을 것도 없어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전투가 벌어지면 도망칠 궁리만 했다. 그러니 싸움이 붙었다 하면 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러시아군에는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시절의 초강대국 소련육군의 명예와 자부심은 흔적도 없다. 지난 5일 심장수술을 마친 옐친은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체르노미르딘 총리에게 맡겼던 핵가방부터 챙겼다. 그리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러시아육군을 절반으로 줄이는 대감군조치였다. 현재 1,700여명의 장성을 500명으로, 300여만의 병력을 160만 정도로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평생을 군대밖에 모르던 수천, 수만명의 장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빈손으로 혹한의 길거리에 쫓겨난다는 사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러는 요즘 불안한 국내치안 때문에 수요가 늘고 있는 경호원이나 용병으로 취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운이 아주 좋은 경우고, 대부분은 하루살이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이들이 군부대에서 빼낸 무기를 들고 외국의 폭력조직이나 테러집단과 결탁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서울에도 벌써 러시아인 거리가 만들어졌다. 남총련 「민족해방군」 검거보도와 겹쳐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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