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선 결론 후 공발심 논의’ 이상한 결정과정/“산업정책이 정치논리에 밀려나” 비판론도현대그룹의 일관제철사업 진출 허용여부에 대한 정부방침의 결정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안광구 통상산업부차관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외 철강소비의 둔화추세, 200만평에 달하는 제철소입지문제, 환경문제, 입지를 둘러싼 지역갈등문제 등을 검토한 결과 현대의 일관제철사업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부방침을 정했다』면서 『이같은 검토결과를 토대로 15일 열리는 공업발전심의회(공발심)의 심의를 거쳐 정부의 최종입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올초부터 재계의 핵심쟁점이 되어온 현대의 제철사업진출문제에 대해 사실상 「결론」을 내리기는 했으나, 정부내의 논의과정과 결정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게 사실이다.
우선 주무부처인 통산부는 지난 12일까지만 해도 현대측의 사업계획서가 제출된 후 검토과정을 거쳐 정부입장을 결정하겠다고 공언해왔으나 사업계획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불가방침을 정해 중요사안을 졸속결정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더우기 주무부처가 아닌 재정경제원차관의 불허발언이 나온 이후 현대제철사업을 심의하는 공발심을 부랴부랴 소집하는 등 급하게 일정을 잡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현대제철사업을 둘러싼 각종 잡음을 우려한 정치권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또 산업전반에 미치는 영향 입지 수급전망 등에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통산부장관 자문기구인 공발심 위원들에게 회의소집 4일전에 개최사실을 통보했음은 물론 회의개최전에 미리 정부방침을 밝혀 공발심이 다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은 것도 시빗거리가 아닐 수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삼성그룹의 승용차사업진출을 허용할 때는 수차례의 공청회를 거치는 등 관련절차를 충실하게 밟은데 반해 현대의 제철사업은 산업정책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은채 미리 방침을 정해놓고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이에 따라 사업허용여부는 물론 처리절차에 대한 형평성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사안과 관련, 정부가 현대제철사업의 불가이유중 하나로 내세운 경제력집중문제와 현정부출범이후 경쟁력강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규제완화중 어느쪽이 경제전반에 득이 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김동영 기자>김동영>
◎“정부 왜 서두나” 의혹 증폭
현대그룹의 일관제철사업 진출문제를 서둘러 매듭지으려는 정부의 행보와 관련,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통상산업부는 현대제철사업문제를 신속히 마무리짓기로 한데 대해 제철소후보지역들이 유치경쟁에 나서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의 마찰은 물론 지역갈등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고 철강수급전망과 경제력집중면에서도 경제전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같은 문제를 우려해 현대제철문제를 서둘러 결말지으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이보다는 대선을 앞둔 현시점에서 현대그룹에 일관제철사업을 허용할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정치적 판단이 정부측을 불가쪽으로 기울게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민감한 시기에 현대제철 후보지가 하동(경남)과 새만금(전북)으로 압축돼있어 어느 한곳에 손을 들어주기가 어려운 정치권과 정부의 사정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재벌그룹이 요구하는대로 대형사업을 허용할 경우 특혜시비 등 국민여론이 나빠질 것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청와대와 정부내 일부 고위관계자들의 재벌 경제력집중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한몫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승용차사업진출허용에 따른 형평성논란이 불가피하지만, 현대그룹에도 제철사업을 허용할 경우 현정부들어 대다수 재벌에게 「선물」을 선사해 경제력집중을 가중시켰다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높다.
◎현대 반발속 공식입장 표명 자제
현대그룹은 정부방침에 반발하면서도 정부와의 정면대결 인상을 주지 않기위해 공식적 반응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현대측은 이날 정부방침이 전해진뒤 고위관계자 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위기가 긴박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에 따라 입장표명은 유보했다. 여기에는 20일 정몽구 그룹회장이 김영삼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동행하는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현대측의 한 관계자는 『사업추진 주체의 의사가 공식 표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불허방침을 내놓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으나 『정부가 서둘러 공업발전심의회를 소집할때부터 「불허입장」을 굳혔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삼성그룹이 승용차사업에 진출할 당시에도 정부가 불허의사를 분명히 했으나 번복한 사례가 있다』며 『이번 제철사업 불허방침도 최종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해 제철사업은 계속 추진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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