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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리·방내리/고속철 경주역 어디가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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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리·방내리/고속철 경주역 어디가 좋은가

입력
1996.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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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 경주역사 후보지가 방내리와 덕천리일대로 최종 압축됐다. 그러나 문화재보호와 경주발전의 모델 등을 둘러싸고 관련부처가 추천한 노선선정 자문위원들간에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공청회를 통해 연내 결정될 경주노선의 역사에 대한 양측 주장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덕천리 지지/최정필 세종대 인문과학대학장·고고학/문화재 보호·교통연계 측면 유리/개발규제하면 “남산 훼손”은 기우

방내리일대는 수많은 문화유산이 매장된 공인되지 않은 야외박물관이다. 경주도심에 왕경을 설정하기 이전 사로 6촌의 모량부가 자리했던 방내리일대는 원경주의 중심이며 삼국시대 이후의 문화재도 상당수 매장돼 있다. 고속도로 건천휴게소 건설과정에서 신라시대 고분 55기가 발견된 것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한국고대사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됐던 원삼국시대의 실체를 증명할 유물들이 최근 방내―건천 인근의 사라리고분에서 발굴됐다. 이 유물들은 왕권과 지배계층이 형성돼 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대변해 준다. 또 남산 못지 않게 유서깊은 단석산과 선도산도 이 일대에 있다.

문화재보호 때문에 형산강노선이 폐기됐다. 그런데 대안으로 방내리를 선정하는 것은 역사의 소중한 현장을 파괴하는 또 다른 행위이다. 경작과정에서 엄청난 유물이 발견된 금척리고분군은 초기신라의 왕릉일 가능성이 많지만 아직 규모와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한 실정이다.

단기간에 이 지역을 발굴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무리한 발상이다. 매장문화재는 「고구마줄기」같아 총체적으로 발굴하는 게 고고학의 원칙이다. 발굴하는데 1년이 될지 100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고속철도의 공사기간에 쫓겨 발굴작업이 졸속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방내리에 역사와 함께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경주의 발전 잠재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경주주민의 대다수는 도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살아온 생활터전을 버리고 신도시에 입주하리라는 추측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타지인들의 부동산투기장이 될 공산이 크다. 경주의 문화재를 보러 오면서 도심 숙박시설을 놓아두고 12㎞나 도심에서 떨어진 덕천리에 누가 여장을 풀겠는가. 덕천리일대에 역사가 들어설 경우 남산의 경관을 해친다는 주장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남산일대는 현재의 문화재보호법으로 얼마든지 무분별한 개발을 규제할 수 있다.

덕천리일대는 문화재보호 측면과 고속철도 건설기간, 울산―포항 등 주변지역의 교통 연계면에서도 방내리보다 입지가 유리하다.

◎방내리 지지/조명래 단국대 교수·지역개발학/신역사 주변 첨단도시 개발 이점/원경주 복원 장기계획과도 일치

건설공기, 토지보상, 주변지역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하는 통상적인 개발방식으로 본다면 덕천리가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경주는 천년고도의 보전과 근대적 도시개발이 첨예하게 갈등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선 및 역사선정은 이를 고려하는 관점에서 접근돼야 한다.

경주의 개발과 보전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충분한 규모의 공간을 선정해 그곳으로 주민들을 점진적으로 이주시키면서 원경주(특히 왕경)를 장기적으로 복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원경주 복원과 병행할 역사주변의 신시가지 조성은 장기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추진돼야 하는데 이러한 개발요건과 방식을 담아 낼 장소로는 방내리가 덕천리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

경주는 남산축을 따라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경주도심개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어서 덕천리에 역사가 들어서면 남산주변의 개발은 시간문제이다. 덕천리 개발은 이조리를 거쳐 경주도심개발과 쉽게 연계되어 성산인 남산, 그리고 도심문화재 훼손을 가속화할 수 있다.

덕천리에 문화재가 적다는 사실은 개발을 오히려 부추길 구실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방내리는 단석산이나 선도산을 문화재보존지구로 묶어 신시가지의 개발 확산을 통제할 수 있는 천혜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 방내리에 문화재가 많다고 하지만 이는 왕경문화재와는 질과 양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개발의 기술, 경제적 타당성면에서 방내리는 동해남부선과 도심통과 중앙선을 이설하면서 주변지역과 연계처리를 하는데 전반적으로 더 유리하다. 방내리를 중심으로 하는 교통연계처리는 경주를 관통하는 포항-울산의 교통흐름을 외곽화시켜 경주도심에 대한 인구집중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결절교통의 이점을 이용한다면 신역사 주변에 경주의 특수성을 고려한 첨단도시를 개발할 수 있어 경주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요컨대 경주 특유의 개발과 보전의 딜레마를 감안하지 않는 역사선정은 역사적 우를 저지르는 것이다. 방내리가 덕천리에 비해 유리한 것은 그러한 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90년 ‘통과’ 확정뒤 6년여 곡절/“문화재 보호” 복병만나 관련단체·부처간 팽팽 대립/건교부 덕천­방내리중 공청회 거쳐 연내 확정 예정

건국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공사비만도 10조7,000억(93년 불변가격)에 이르는 경부고속철도사업은 경주노선이라는 복병을 만나 6여년동안이나 우여곡절을 겪었다.

문화재보존과 공기단축 및 비용절감을 둘러싼 갈등, 정치 논리와 지역주민들의 이해까지 겹쳐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90년 6월 고속철도추진위원회가 대구―부산 직통노선 대신 경주통과노선을 확정하면서 경주노선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경주도심을 통과하는 「형산강노선」이 발표되자(92.6) 문화재위원회가 반발, 경주외곽의 건천노선을 요구하고 나섰다(93.6). 문화재위는 보물급 주요문화재 20여점이 영향을 받는 등 세계 10대문화유적지의 하나인 경주가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문체부도 동조, 건천노선이나 경주통과 전구간의 지하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95.3).

건교부는 이에 대해 공기지연과 추가비용 때문에 노선변경이 어렵다고 밝혔다(95.6). 문체부는 문화재관리국이 94년 10월 내줬던 공사예정 구간내의 유적발굴허가를 취소, 건교부의 발목을 잡았다.

부처간 이견이 증폭되자 총리실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형산강노선에 대해 재검토를 결정했다(95.9). 불교계와 한국고고학회 등 102개 단체는 「고속철도 경주통과 백지화운동 추진위」를 결성, 경주노선은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됐다. 경주노선이 갈피를 못 잡자 국무총리행정조정실은 형산강노선과 건천―화천노선중 택일한다는 입장을 정리하고(96.1) 문체부와 건교부 추천인사들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96.4).

6월8일 추경석 건교부장관은 급기야 형산강노선을 폐기하고, 문화재보호 등을 고려해 연말까지 노선을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선선정 용역을 받은 교통개발연구원은 문체부 건교부 등의 추천인사 17명으로 자문회의를 구성, 수차례 회의를 갖고, 역사예정지를 방내리와 덕천리일대로 압축했다(96.10). 교통개발연구원은 지난달 29일부터 4일간 현지답사를 거쳐 최종 노선대안을 제시키로 했으나 자문위원간에 방내리와 덕천리를 둘러싸고 7대 7로 대립,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건교부는 이달 말 공청회를 개최, 역사와 노선을 최종결정할 방침이다. 6여년을 끌어 온 경주노선이 연말까지는 어떤 식이든 결말이 난다.<정덕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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