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방에 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아파트다. 중소도시의 대단위 단지는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한 읍단위만 들어서도 아파트 한두 동은 쉽게 볼 수 있다. 7년만에 치악산에 갔던 친구는 익은 벼가 노랗게 일렁거리는 논길을 지나 산에 당도할 줄 알았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파트가 막아서는 바람에 기분을 영 망쳤다고 한다.시골의 아파트가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 산세와 워낙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수직으로 솟은 직육면체 덩어리는 완만한 구릉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전원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일순간에 깨버린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가운데로 강이 흘러 자연환경은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던 서울이 「스카이라인이 없는 흉물」소리를 듣게 된 주범도 아파트다.
그래서 좀더 인간적인 삶을 원하는 서울 사람들은 출 퇴근에 두시간씩 쏟아붓는 것도 마다않고 시골 전원주택으로 속속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도 지방은 서울이 밟아온 전철을 고스란히 되밟으려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지방 건설회사는 「서울 어느 아파트처럼 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아파트를 똑같이 지었다는 말도 있다.
지방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배경은 이해가 간다. 기존 농촌주택과 비교하면 관리가 간편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난방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철컥 문 잠그고 나가니 집 볼 걱정 없고 이웃이 가깝다. 더구나 집 값도 오른다. 말하자면 서울에서 아파트가 인기를 끈 요인의 재현인 셈이다.
그러나 서울에는 땅이 없다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반면 농촌은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지방민들의 서울 선망과 정책 당국의 전망 부재가 전국토를 스카이라인이 없는 흉물로 몰아가고 있다 할 것이다.
요즘 아파트는 분양도 잘 안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결혼 완료로 그 자녀세대가 결혼을 시작하는 2005년께까지 가족형 아파트 수요는 한계가 있다. 독신인구 증가에 따른 원룸형 아파트만 인기있을 뿐이다.
지금이 바로 자연과 어울리면서도 쾌적한 가족형 주택은 무엇이며 어떻게 공급할까를 새롭게 논의할 적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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