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일단 수습된 후 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9월18일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한 북한 잠수함이 발견되고, 대대적인 수색전이 벌어졌던 49일동안 군은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다.26명으로 추정되는 무장간첩들은 사살 13명, 자폭 11명, 생포 1명, 생사불명 1명으로 최종정리됐는데 연인원 150만명을 투입하여 공비 13명을 죽이는 동안 우리측 사망자는 군경 12명 민간인 4명으로 16명에 이르렀다. 사망자 중에는 대령까지 포함돼 더욱 국민을 놀라게 했다.
한 시민이 신고할 때까지 북한 잠수함 침투를 깜깜하게 몰랐던 구멍뚫린 해안선 경비, 늑장출동, 작전의 혼선, 정찰장비 부족등 이번에 드러난 군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6·25때 북의 기습에 어이없게 당했던 군, 가깝게는 지난 68년 울진·삼척의 북한 무장공비 침투때 민·군 61명이 죽는 피해를 당했던 군이 오늘도 여전히 북의 기습에 허점을 찔리고 있다면 어떻게 국민이 마음놓고 살겠는가.
그러나 군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해서 국민이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16명의 생명을 생각하면서 더이상 분단으로 인한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나서야 한다.
46년전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우리는 200여만명의 생명을 잃었고, 그후의 분단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또는 남북의 체제유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피흘리고 고통받았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겪으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그토록 기구했던 우리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끝까지 발악하며 죽어간 공비들에 대해서도 나는 비애를 느낀다. 그들은 분단된 나라에서, 그것도 북한땅에 태어나 김일성부자의 「전사」로 사육됐고, 선택의 여지없이 무장공비로 남파되어 죽음을 맞았다. 「위대한 지도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죽어간 그들 역시 어리석고 가엾은 분단의 희생자들이다.
이런 희생에 대해서, 지난 반세기동안 「통일 과업」이란 이름아래 행해진 만행들에 대해서, 솟구치는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은 북을 향해 이렇게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다.
<안돼! 더이상 살상은 안돼! 분단의 비극은 벌써 끝났어야해. 당신들의 손에는 너무 많은 피가 묻었어. 그것은 동족의 피야. 굶주림, 질병과 재난을 도우려는 형제들의 그 피를 닦지 않은 손을 잡을 수는 없어. 대화도 협상도 원조도 피묻은 잡고는 할 수 씻고 약속해. 다시는 형제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말해. 기구했던 우리 민족의 과거를 돌아봐. 피흘려서는 안돼. 덧없이 죽어서는 안돼…>안돼!>
독일이 통일되기 전 베를린 장벽을 넘어 자유의 세계로 탈출하려던 동독인들은 동독 수비대의 총격으로 수없이 목숨을 잃었다. 서독인들은 동족을 죽이는 만행에 저항하여 장벽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탈출자들이 숨진 자리에 비를 세우고, 촛불을 밝혀 애도하곤 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한열의 죽음에 저항하여 노도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시민정신으로 통일과 남북관계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극우와 극좌만이 소리지르는 우리 사회, 감상적인 극좌 모험주의와 증오에 찬 극우 반공슬로건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민족과 생명의 존엄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통일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날로 악화하여 올겨울 수만명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포애로 밝힌 등불을 들고 추위속에 서서 북을 향해 외치고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피묻은 손을 씻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더이상 피흘려서는 안돼. 인민을 굶어죽게 해서는 안돼…> <이사대우 편집위원·도쿄에서>이사대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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