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못잖은 일에 대한 열정/옷을 입는게 아니라 문화를 입는 자유와 분위기를 즐기는 자기연출가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은 행복하다. 남들까지 그렇게 인정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LG패션 신홍순 사장은 그런 점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남이 보나 자신이 생각하나 패션업계 사장으로 딱 어울린다.
TV광고에 비친 그의 모습에는 거리낌이 없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새롭게 보입니다』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F발음에 액센트를 준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다.
자신감. 회사기획팀과 광고회사는 177㎝, 75㎏의 훤칠하고 배우 뺨치는 용모를 갖춘 그에게 광고 효과를 염두에 두고 출연을 권했을지 모르지만, 그를 선뜻 대중 앞에 끌어낸 것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패션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직업관에서 나왔다. 패션 속에서 살아 왔고, 패션으로 살아가고, 또 패션의 세상에서 살아갈 그에게 패션은 자존심이자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동일어이다.
그는 신입사원 시절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당시 유행하던 폭넓은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그런 자신만만함으로 일에 미쳤고 최선을 다해 왔다. 70년대초 수출담당과장시절에는 미국회사로부터 비닐매트 생산을 의뢰받고, 밤을 새며 일주일을 꼬박 공장에서 기거한 적도 있었다.
그의 나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대기업의 사장이니까 어림잡아 쉰은 넘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몸에 밴 자신감과 유연한 사고방식, 자유롭고 패셔너블한 감각은 50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그의 나이를 거꾸로 돌려 놓는다.
그의 패션감각은 타고 났다. 대단한 스타일리스트였다는 아버지의 감각을 물려받기도 했다. 청년 신홍순은 다림질하지 않은 옷은 입지 않았고 ROTC시절에는 남대문시장에서 미군복을 사입어 멋을 냈다.
그래서 아내 남혜숙씨는 편하다. 한번도 남편의 옷을 산 적이 없다. 『자기 옷은 자기가 골라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지론이므로. 첫 인상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차림이 만든다고 믿는 신사장은 시간이 없어도 옷을 쇼핑하는 시간 만은 낸다.
패션에 대한 그의 철학. 그것은 「패션은 문화」라는 신념이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은 패션수준과 같고, 개인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에게는 옷입기가 곧 문화입기인 셈이다. 스스로 매긴 패션점수는 90점. 남들의 평가는 이보다 더 높아 지난해 「패션피날레」에서는 문화·경제인 부문 베스트드레서로 뽑혔다.
직책 때문에 정장을 해야 할 때는 단조로운 슈트차림만 하지 않고 회색바지에 청색 더블재킷 또는 갈색 재킷을 자주 선택하는 편이다. 패션업계 사람들과 만날 때는 포버튼도 즐겨 입고 나비넥타이도 자주 맨다.
공식적인 모임에는 흰색셔츠를 입지만 평소에는 블루 톤이나 흰색에 블루 스트라이프가 있는 셔츠에 손이 자주 간다. 80여개 있는 넥타이는 디자인, 색상, 매는 방법까지 셔츠와 양복에 맞춘다. 양복은 물론 LG 브랜드지만 넥타이 만은 브랜드를 가리지 않는 편.
그에게 패션은 또 분위기이다. 패션은 분위기를 입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옷장을 열 때 모임의 분위기와 장소, 때를 꼭 염두에 둔다.
그는 자유롭고 유연하다. 이 같은 기질이 패션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격식은 필요하나 얽매이는 것은 싫어한다. 분위기만 좋다면 양주 1병도 거뜬하다. 「마이 웨이」나 남일해의 「이정표」가 18번이지만 분위기를 맞추려고 「옥경이」도 곧잘 부르고 「핑계」나 「잘못된 만남」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봄에는 잠실야구장에 갔다 치어리더가 된 적도 있다. 경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젊은 사원들과 응원무대에 뛰어 올라갔다.
그는 골프를 즐기기 않는다. 골프 칠 시간이 있으면 인사동에 들르고 음악회에 간다.
자신의 브랜드에 집착하는 것은 대학시절 이후 지금까지 단 세사람의 이발사에게만 머리를 맡겼다는데서 드러난다. 먼저 그의 머리를 손질한 두 사람이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면 오직 한사람 만이 그의 헤어스타일을 다듬었을 것이다.
사교는 그에게 중요한 일상이다. 1주일에 하루 정도만 집에서 저녁을 할 만큼 모임과 만남이 잦다. 자기 만의 색깔과 주장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느낌과 감각에서도 배울 게 많다는 판단에서 만남 자체를 즐긴다.
항간에서 베스트드레서로 꼽는 데 대해 굳이 『부담스럽다』고 손을 내젓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정 그가 원하는 것은 옷을 잘 입는 게 아니다. 자유로움 속에 품위를 잃지 않는 「스타일리스트」, 그것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패션이다.<최성욱 기자>최성욱>
□약력
41년 서울 출생·55세
경기고·연세대 정외과 졸업
ROTC 1기
66년 락희화학공업사 입사
78년 반도상사 섬유사업부 본부장
84년 럭키금성상사 반도패션사업부 상무
95년 LG패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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