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그만 두고 전업작가로 개점을 한지도 벌써 몇해가 지나갔다. 전업작가란, 이름은 그럴듯 하지만 겉모양은 실업자나 매 한가지라 늘 빈둥빈둥 노는게 일이요,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게 다반사이다.그래서 남들은 남아도는게 시간인 줄 아는 모양이다. 어떤 모임 초청이나 강연 부탁을 받고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을 하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니 어쩌랴. 책상 앞 달력에는 무슨무슨 일, 무슨무슨 원고로 빈 틈이 없다. 어떤 때는 숨이 찰 지경이다.
바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아침이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두 놈을 학교에 보내기까지 준비물 챙기랴, 도시락 챙기랴, 밥 먹이랴 정신이 없다. 그러니 모두 「빨리빨리」라는 말이 입에 배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인공위성 쏘아올릴 때처럼 카운트다운까지 해가며 재촉을 해댄다. 그렇게 훈련된 놈들이라 그런지, 거꾸로 제 에미에게 무엇을 졸라댈 때는 『빨리빨리』라고 해대는 꼴이 마치 불에 맞은 노루새끼들 같다.
바쁜 것은 우리 식구들만이 아니다. 차를 몰고 나가보면 다른 사람들 역시 얼마나 바쁜지. 조금만 느긋하게 운전을 해도 뒤에서 금세라도 박아버릴 듯이 코빼기를 바싹 붙이고 밀어붙이거나 클랙슨을 울려대거나, 심지어는 상향등까지 번쩍번쩍거리기 일쑤이다. 원래 사람이 바빠지면 숨이 가빠지게 마련이고, 숨이 가빠지면 절로 화가 들끓어대게 마련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가 많은 것도 그런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요즘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한 박자 느리게」이다. 영어식으로 하자면 「원 템포 슬로리」가 될 것이다. 아무리 속도전의 시대요, 속도에서 떨어지는 자는 일류가 될 수 없고, 일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시대라 하지만 한 박자 늦추어서 당장 망하지는 않는다. 다리 무너지는 것이나 백화점 붕괴를 보면 오히려 거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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