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실 능청 우쭐 으쓱/품마다 한국적 냄새/액션영화로 만들고 싶어영화 「서편제」의 「유봉」. 소리에 대한 그의 광기어린 집착과 절절이 묻어나던 남도의 한. 김명곤(44)이 아닌 어느 누구도 그릴 수 없었던 인물이다. 남도 판소리에 대한 사랑. 민족극에 대한 고집. 우리 것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찬 김명곤. 그가 택견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명곤이 택견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78년.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 기자시절 때이다. 그는 택견을 고스란히 몸속에 감추고 있던 송덕기(1893∼1987), 신한승 선생(1928∼1987)을 찾아 취재했다. 『십팔기를 하는 친구와 함께 돌아다녔죠. 당시만 해도 꼭꼭 숨어있던 민속 무예를 찾고 싶었습니다』
김명곤은 이들로부터 자료를 모으고 얘기를 전해들어 「숨어산 외톨박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그리고 1983년 송씨와 신씨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택견을 익히게 된 것은 대한택견협회 부회장이던 이용복씨가 5년여전 그를 찾아오면서 부터다. 택견에 관한 책을 준비하던 이씨는 그의 기사를 보고 자료를 구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간직하던 자료를 건네준 김명곤은 5개월동안 이씨로부터 체계적으로 택견을 배웠다. 품밟기에서 째차기 내차기 등 다양한 발질법과 제치기 맞쳐들기 등 손동작까지.
『무술 그 자체보다는 「우리 몸짓」이라는 데 반했습니다. 「굼실」거리면서 「능청」스럽고 「우쭐」하면서 「으쓱」거리는 품 하나하나에 한국적 냄새가 풍기죠』
김명곤이 연기할 때면 「우리것」이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에게는 박초월 선생에게서 전수받은 판소리의 흥과 대학 연극반시절부터 배워온 탈춤, 그리고 택견의 몸짓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소리는 어깨를 가만히 놔두지 않잖아요. 어깨를 못살게 굴어야 속이 시원하죠. 탈춤과 택견의 몸놀림도 3박자리듬이라 마치 춤사위 같습니다』
김명곤은 택견이 태권도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태권도와는 기본 원리가 다릅니다. 택견은 유려한 곡선이 주조이지만 태권도는 직선의 2박자 동작입니다』
하지만 택견이 원형 그대로만 묵혀지는 것도 싫다. 『택견은 한마디로 조상들의 싸움기술이었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생활체육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택견은 좀더 다듬어져야 합니다』
동네에서 틈나는대로 택견을 연마하는 김명곤에게는 바람이 있다. 『택견으로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일본에는 사무라이들의 영화가 있고 중국에는 쿵후영화가 있지 않습니까』<유병률 기자>유병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