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순위 매긴다면 세계랭킹 2위권쯤”/가장 어려운 대국상대는 역시 이창호 9단/기복 심한 것이 약점이자 인기비결인듯/아직 애인없고 부모님께 용돈타써「세계 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30)이 자신의 바둑인생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일지매」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려한 용모와 화려한 공격바둑으로 팬들의 인기가 높은 유9단은 일찌감치 한국바둑을 이끌 차세대 선두주자로 꼽혀왔다. 그동안 국내기전에서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이창호 9단의 독주를 견제해온 유9단은 뛰어난 감각, 강한 전투력, 큰 바둑에 강한 승부근성 등으로 국제기전에서 오히려 이9단보다 더 큰 활약을 해왔다. 93년 제6기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전에서 우승, 세계대회우승자 경력으로 지난 6월 9단에 특별승단한 유9단은 6일 세계 최대규모의 국제기전으로 「바둑올림픽」이라 일컫는 제3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 조훈현 서봉수에 이어 3대 「세계 바둑황제」가 됐다. 응씨배에 이어 이달말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동갑내기 숙적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의전기기) 9단과의 재대결을 앞두고 있는 유9단을 만나 그의 바둑관과 인생관을 알아보았다.<편집자 주>편집자>
□대담=송대수 북경특파원
―우승을 축하합니다. 이번 응씨배에서 어려운 고비는 없었습니까.
『응씨배는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 등 선배기사들이 1, 2회 대회를 연이어 석권, 한국기사들의 성적이 좋았던 대회입니다. 그래서 선배들의 빛나는 전통을 훼손시키지나 않을까 하고 부담이 컸는데 다행히 우승을 해서 기쁩니다.
세계최강 이창호 9단과의 8강전이나 악전고투끝에 행운의 한집승을 거둔 린하이펑 9단과의 준결승전 등 모든 대국이 어려웠지만 운이 좋아서 잘 풀린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결승전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었어요』
―곧이어 월말에는 삼성화재배에서 요다 노리모토(의전기기) 9단과 결승 3번기를 벌이게 되는데 이에 대한 전망은.
『승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전망할 수는 없습니다. 요다 9단뿐 아니라 각국의 정상급기사들은 모두 기량면에서 별 차이가 없어요. 정신력과 대국 당일의 컨디션이 승부의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컨디션은 최상의 수준입니다』
―요다 9단은 「한국기사 킬러」라고 불릴 만큼 한국기사들을 상대로 승률이 좋았습니다. 실제로 유9단도 작년까지 2승4패로 뒤지고 있었지요. 이번에 두어보니 요다 9단의 바둑이 어떻던가요.
『요다 9단은 상대방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특히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고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언제라도 해 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응씨배와 삼성화재배에서 잇달아 이창호 9단을 격파하는 등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바둑계에서 자신의 기력 랭킹을 매긴다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요. 또 가장 어려운 상대와 좋아하는 기사는 누구입니까.
『역시 세계랭킹 1위는 이창호 9단입니다. 바둑계는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지만 2위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실력있는 기사들이 집중돼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속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국상대로서도 역시 이창호 9단이 가장 어렵고, 좋아하는 기사는 오청원 선생입니다』
―유9단은 흔히 세계최고의 공격수라고 불립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기풍과 바둑의 장점과 단점은.
『전에는 세계최고의 공격수라고 자부했는데 최근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단점이 많고 실수투성이이며 장점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상대에 따라 기복이 심한 것이 큰 약점이지요』
―가족관계, 바둑을 배운 동기, 그동안의 바둑공부를 해온 이야기 등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부모님이 계시며 3남4녀 중 다섯째입니다. 가족 중에는 아버지가 10급, 막내동생이 3급이지만 바둑가족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버지 뜻에 따라 바둑을 배웠으며 처음 바둑돌을 잡은 것은 7세 때였지요. 서울에서 66년에 태어나 대전에서 잠시 살았고 충암초등학교와 충암중·고를 졸업했습니다. 권갑룡 사범님과 아마추어 강자인 황원조씨 등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유9단은 특별한 스승이 없이 혼자서 바둑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제2의 유창혁을 꿈꾸며 바둑을 공부하고 있는 수많은 바둑꿈나무들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바둑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바둑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라는 말외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
―유9단은 아마추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기사라고 알려져 있는데 인기의 비결은.
『실수가 많아 약한 사람들한테 패하는 경우가 잦아서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창호 9단이 완벽한 바둑을 두는 반면 나는 기복이 심해서 그점이 오히려 아마추어 팬들이 좋아하는 듯합니다』
―언제쯤 결혼할 예정이며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이라면.
『아직 애인도 없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고 어떤 조건의 여인이 이상적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각종 기전에서 받은 상금은 얼마나 되며 어떻게 관리하는지요.
『상금 총액이 얼마인지는 계산을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 부모님에게 맡기고 필요한 만큼 용돈을 타서 쓰지요』
―한동안 기공을 연마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평소 건강관리나 바둑공부는 어떻게 합니까.
『기공을 좀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특별한 건강관리는 없고 쌍문동 집근처의 도봉산에 자주 등산을 갑니다. 1주일에 한번은 축구를 해서 긴장된 몸과 마음을 풀고 있습니다』
―장차 바둑계의 판도변화와 한국바둑의 장래전망에 대해.
『우리나라가 제일 밝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국에 있는 1,000여 개의 바둑교실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바둑꿈나무들은 우리 바둑계의 큰 자산이지요. 현재 국내 프로바둑계에도 20대 이하의 젊은 층에 좋은 재목감이 많고 충암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열심히 기도연마를 하고 있으므로 조만간 국내외 바둑계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현재 국내외 기전이 20개가 넘고 있습니다. 많은 대회에 출전하려면 체력에 문제는 없는지요. 기전을 선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솔직히 대국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부담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국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지요. 취미나 좋아하는 노래, 오락 등은 무엇입니까. (유9단은 기사축구팀에서도 센터포드로 활약하고 있고 특히 노래를 잘 부른다고 알려져 있다)
『괴로울 때는 술을 마십니다. 주량은 양주 작은 것 1병 정도인데 술종류는 가리지 않지요. 취미는 비디오감상, 음악듣기, 독서 등 다양한 편입니다. 최신 가요를 좋아하는데 따라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있어 저도 이제 구세대가 됐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약력
▲66년 서울 출생 ▲83년 아마국수전 우승 ▲84년 4월 제52회 입단대회서 프로 입단 ▲86년 충암고 졸업 ▲87년 신왕전 우승 ▲92년 왕위전 우승 ▲93년 제6회 후지쓰배 우승 ▲93년 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 선정 ▲96년 6월 9단(입신) 승단 ▲기풍:공격바둑 ▲별명:일지매 ▲연수입:1억5,000여만원(95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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