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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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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김영민

입력
1996.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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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원전 지상주의 ‘이제 그만’/“이시대 글쓰기란 무엇인가/글쓰기가 지식인의 증명방식이 될 수 있나”/학계에 만연한 망령에 대한 뒤집기이 시대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가 지식인의 합당한 존재증명 방식이 될 수 있는가.

『자신을 학자로 이해하고 또 그렇게 인정받기 원하는 이들은 논문이라는 특정한 글쓰기 형식을 피할 수 없다. 또 글의 양과 질에 관계 없이, 논문이란 그의 정신적 삶을 집약적으로 대변한다고 여겨진다』

제대로 된 학문 세계라면 이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렇게 운을 떼는 데서 소장 철학박사 김영민씨(38·전주 한일신학대 철학담당 교수)의 칼날은 번득이기 시작한다.

그가 또 하나의 논쟁적 저서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간)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근저 「컨텍스트로, 패턴으로」(문학과 지성사 간)에서의 논의를 우리의 학문 재생산구조에 초점을 둬, 보다 구체화했다.

그의 관심은 전공인 철학을 뛰어넘어 인문학, 소설쓰기까지 겨냥한다. 이 모든 것들이 「글쓰기」 라는 개념을 통해 「글쓰기 철학」으로 응축된다. 김교수는 그 개념을 풀기에 앞서 글쓰기의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적 배경을 밝히는 작업에 주력한다. 한국에서의 글쓰기 작업과 관련된 고질적인 질곡을 해명하기 위한 정비작업이다.

「원전만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모든 것은 논문이라는 담론 체계에 의해 증명되리라」….

70∼80년대, 제도권이 금기시하면 할수록 지식인들에게 마르크시즘은 더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그같은 경향은 결국 논문 중심주의, 원전 중심주의로 귀결됐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여전히 우리 학계 위를 배회하고 있는 그 지상명령에 대해 저자는 정면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 논지는 명쾌하고, 논조는 근래 인문학적 저작물에서 볼 수 없었던 단호함으로 가득하다.

논문중심주의와 원전중심주의가 우리 인문학에 끼친 해악들을 폭로하는 데서 김교수는 장정을 시작한다. 그 망령이 거드름 피우며 하는 행세를 비판하는 대목에서 그는 배우는 자, 가르치는 자 가리지 않는다.

지금의 학계를 바라보는 서릿발 같은 시선은 학위증에 대한 비아냥으로 절정에 이른다. 기지촌 색시가 생업을 위해 확보해야 했던 「보건증」, 따돌림 받지 않고 행세하기 위해 총독부로부터 받은 「식민증」의 남루한 역사는 그에 의하면 「학위증」이란 질곡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

지도교수에 충량히 복종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학문의 세계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갖가지 「정교한 해프닝」들은 독자들을 씁쓸하게 만든다.

「심청전」에서 안정효의 「하얀 전쟁」까지 동서고금의 문학작품들을 두루 텍스트로 삼는 저자 특유의 폭넓은 문제의식도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라는 제목에 값한다.<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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