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여전히,나는 글쓰고 싶으니… 눈물겹다/‘군중속 고독’ 화두로 부자간 대화형식에 담은 우리들 삶의 풍경화행복한 글쓰기라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더 쓰다가는 죽을 것 같아』 3년간 단 한 장의 소설도 쓰지 않았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들에게 말한다.
『작가로서 유명하다는게 뭔지 아니. 글을 쓸 때마다 내 몸이 발가벗겨져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 속으로 내던져지는 기분이야. 난 매번 그게 두렵고 또 그 긴장 속에서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러나 작가 박범신은 돌아왔다. 「풀잎처럼」 일어섰다. 돌아오면서 그는, 90년대 한국문학에 삶과 문학의 본질이라는 구원의 화두를, 시퍼렇게 선 칼날처럼 날카롭게 던진다.
박범신이 이번 주말께 발간되는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중편 「제비나비의 꿈」(170매)은 그가 지난 여름 3년여 만에 썼던 「흰 소가 끄는 수레」의 연작이다.
「흰 소가…」에서 절필의 이유를 토로했다면 「제비나비의 꿈」에서 박범신은 보다 근원적인 「무리 속에서의 고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 자신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무겁지만 정제된 문체에는 박범신 특유의 경쾌한 어조, 리듬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스무살 난 아들이 교양국어를 담당하는 대학 강사에게서 아버지의 문학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듣고, 친구들 사이에서마저 고독감을 느낀다. 소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족사를 빌어 자신의 문학의 출발과 글쓰기에서의 결락을 이야기하고, 다시 아들이 답하는 형식이다. 「제비나비」는 「토마토밭에… 화려한 날개를 마음껏 펴고 난다만… 제 무리를 잃은 공포감에 우왕좌왕하는 게 확실한」 우리 모두의 표상일 수도 있다.
80년대를 살았던 이른바 중산층의 삶의 허실을 「거시기」와 「특별시」로 통렬하게 풍자했던 박범신.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불의 나라」…
70년대 「문제작가」에서, 80년대를 지나 90년대까지도 드물게 「장수하는 인기작가」라는 꼬리가 붙어다녔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93년 12월 어느날 새벽 작가로서는 유서나 다름없는 글을 썼다. 『이제 상상력의 불은 꺼졌다』로 시작되는 사실상의 절필선언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듯 술술 써내려간 뒤 당장 신문연재소설을 중단했다. 작가로서의 무력감, 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 때문이었다.
이후 2년9개월은 「아침녘이면 사람들이 한 작가로서의 저를 잊기 바라고, 저녁녘이면 행여 사람들이 모두 저를 잊을까 염려하는」 이율배반적 분열과 번뇌의 갈등속에 유형처럼 보낸 시간이었다. 용인 굴암산 아래에 200평 남짓 텃밭을 가꿨다. 감자씨를 묻어 꽃을 피우고 상추, 아욱, 쑥갓, 시금치, 고추까지 열아홉가지 씨앗과 모종을 심었다. 지난 한 학기에는 명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마저 쉬었지만 문창과 학생들이나 작가 김성동과 가끔 술 한 잔 하는 것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이었다.
지천명이라는 쉰의 나이에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자꾸 글을 쓰고 싶으니… 눈물겹다』 『존재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박범신은 「제비나비의 꿈」에 이어 세계와의 불화에서 생기는 존재의 고독의 문제를 다룬 연작 두어편을 더 쓸 생각이다. 『그리고는 내부에서 물이 차기를 기다려, 재미와 감동을 주는 소설을 행복하게 쓰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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