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땐 “개혁 후퇴” 부담도 작용10일 열린 고위당정회의에서 정부 주도하에 연내 노동법 개정을 마무리하기로 최종결론을 내린 것은 김영삼 대통령 특유의 문제해결 방식에 맞는 것이다. 취임 이후 몇차례 어려운 국정현안이 있을 때마다 김대통령은 정면돌파의 해법을 찾아왔다. 그동안 청와대에서는 관련 수석들이 내부모임을 갖고 김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정부가 주도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왔다.
청와대측이 이같은 방침을 정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노사관계 제도 및 관행이 정통성을 의심받는 군사정권이 경제개발을 주도해 오면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개정이 불가피하다는게 첫째 이유이다. 이처럼 전근대적인 노동법 규정을 가지고는 점차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도 이와 관련, 『노동법 개정의 큰 방향은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측은 『합의 안된 상황에서 개정은 어려우니 내년으로 미루자』는 정부내의 연기론을 일축한데는 「무기력한 정부」라는 비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의과정을 통해 노동법 개정문제가 최대 국정현안으로 떠오른 마당에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특히 노동법 개정문제가 김대통령이 취임 이후 추진해온 개혁작업의 마무리라는 측면에서 「개혁의 후퇴 내지는 실종」이라는 정치적 부담도 뒤따를 수 있다. 따라서 어차피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거나 방치하거나 똑같이 비판이 제기된다면 개혁의 원칙에 입각해서 일을 처리하는게 내년의 대선에서도 더 득표력이 있다는 판단을 한 것같다.
우리나라의 OECD가입과 관련해 볼 때도 연내에 국제적 수준으로 노동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물론 노동법 개정이 OECD가입의 필수불가결한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OECD가입을 위한 협의과정에서 OECD측은 우리측의 불공정한 노동법 규정을 지적했고 우리나라도 『가급적 이른 시일내에 개정할 방침』이라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WTO에서 이미 구체화하기 시작한 「블루라운드」를 고려할 때도 노동법 개정은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청와대내에서도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논의가 가열되자 『내년 3월까지 시한을 정해 타협을 유도하고 그때까지 안되면 정부 주도로 입법을 추진하자』는 절충안이 있었다. 그러나 내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해여서 정치권이 노동법 개정문제를 숙고할 시간이 없다는게 청와대내의 정무적 판단이었다.
더욱이 3월께면 임금투쟁에 들어가는 시기여서 노사 양측 모두 노사개혁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노동법 개정문제를 내년으로 미룰 경우 사실상 김대통령의 임기중에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신재민 기자>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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