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1개 짓는데 법관문 70개/‘관광=사치’ 정책순위도 뒷전 투자의욕 봉쇄불과 2년전인 94년은 정부가 「한국 방문의 해」로 정한 해였다. 정부는 90년 9월 당시 94년에는 외국인관광객 450만명을 유치하고 관광수입 50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아래 범정부적인 추진기구를 구성하는 등 떠들썩한 계획을 수립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94년 관광객은 350만명에 불과하고 관광수입은 38억달러에 그쳐 오히려 2억8,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 7월에도 「관광산업 육성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관광업계는 이 대책에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겉보기에는 그럴싸 하지만 알맹이가 없을 뿐 아니라 아무리 정책지원과 규제완화가 이뤄져도 10년간의 정책실종 뒤끝이어서 그리 큰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심지어 「탁상공론」 「허울만 좋은 소리」라는 비아냥마저 나돌 실정이다.
이는 『투자를 하고 싶어도 투자 길이 꽉 막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 정부가 올해초 국내 10대 기업군의 관광시설용 부동산 취득을 허용하고 설악 경주 제주등 5대 관광특구내 토지매입과 여신상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호텔 등 관광시설을 짓겠다고 나선 재벌기업은 한 곳도 없다. 겹겹이 쌓인 규제를 뚫고 지어봤자 교통유발 환경개선 등 각종 부담금에 시달리고 투자회수는 10년, 20년이 걸리니 수지가 안맞는다는 판단에서다. 문체부 관계자도 『현재의 규제대로라면 호텔의 이익이 은행금리보다 싼 연 8%에 그치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호텔을 지으려면 식품위생법 공중위생법 소방법 주차장법 도시교통정비촉진법 수질환경보전법 소음진동규제법 폐기물관리법 등 줄잡아 20개가 넘는 법률에 60∼70개 조항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 특급호텔은 연 1억원정도의 교통유발부담금과 2억원의 환경개선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에따라 외국 관광객은 86년부터 2.6배 늘었으나 호텔객실은 1.6배 증가에 그쳐 지난해부터 객실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했다. 수요공급원칙에 따라 우리나라 호텔값이 경쟁도시인 도쿄 홍콩 방콕 타이페이 등에 비해 비쌀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호텔이 20∼40개가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있어 이 행사들의 성공적 개최 여부마저 의심케 한다.
콘도 등 관광숙박시설을 운영하는 종합휴양업부문에서도 관광사업자의 입지가 매우 좁아 투자자들이 나서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합휴양업의 경우 회원 모집시 객실당 회원수를 규제함으로써 자율경쟁에 따른 성장을 사전에 배제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스키장 골프장 등 체육시설은 회원수 모집에 제한을 두지않아 모순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의 관광산업정책이 이같이 규제로 일관하고 혼란상을 보이는 것은 부처간 손발이 안맞는데 그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관광산업에 대한 기본시각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관광=사치」라는 기본인식이 관광산업의 황폐화를 초래한 것이다. 물론 정부는 95년 3월 관광산업을 소비성 서비스업종에서 제외, 일반 서비스업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명분만 내세웠을뿐 내용은 똑같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아직도 관광산업은 정책우선 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 규제일변도의 정책아래 세제나 금융상의 불이익은 말할 것도 없이 투자기회마저 봉쇄돼 있다는 것이다. 94년 한해동안 서울 S호텔이 정부로 받은 지시문서가 모두 1,400건에 달하는 것만으로도 규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이밖에 불편한 교통편, 부실한 여행상품, 관광업체의 불친절 등 관광서비스의 질이 뒤떨어진다는 점도 관광대국의 역행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선연규 기자>선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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