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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성패(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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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성패(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6.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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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깃발은 개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목청을 높인 것이 부정부패의 일소요 공직자 비리의 척결이었다. 사회의 정화없이 어떤 개혁도 공염불이다. 개혁의 제일보는 깨끗한 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이 있었다. 김대통령은 단호한 어조로 비리의 발본을 선언했고 가차없는 처단을 공언했다. 사정의 서슬은 시퍼랬다. 국민들은 믿었다. 그리고 기대했다.그런데 요즘 공직자 비리가 무더기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다시 『부정부패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추호도 용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취임 초와 꼭 같은 목소리다. 그렇다면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작금뿐 아니라 그동안 내내 비리는 살아 있었고 오히려 더 지능화하고 대형화해 왔다.

검찰만 하더라도 『앞으로 공직자 비리수사는 무기한 계속한다』고 시한 없는 수사를 천명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이 말은 그동안 누가 손에 쥐어주는 것 말고는 수사를 손놓고 있었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부정부패는 우리나라 건국 이래의 망국병이다. 5·16의 쿠데타 정부가 혁명공약에서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라고 내건 이후 역대 정부는 저마다 이 병폐의 척결을 시정방침의 제1조로 삼아왔다. 그러나 고질을 더 심화시키기만 했을 뿐 모두 실패했다. 이제 김영삼정부마저 손들고 말 것인가. 쿠데타의 총칼로도 못 막고 군사정부의 철권으로도 못 다스렸으니 다시 실패해도 부끄러울 것도, 책임질 것도 없다고만 할 것인가.

김영삼정부는 이전의 정부와 조건이 다르다. 다른 정부들은 정의를 관철할 만큼 정권 자체가 정의롭지 못했다. 청결을 강요할 만큼 청결하지 못했다. 정권의 정통성과 순결성의 취약 때문에 구호가 공전했다. 그러나 김영삼정부는 스스로 깨끗한 정부를 표방하고 문민정부로 자부하듯이 그런 굴레에서 자유스럽고 떳떳하다.

또 부정부패는 경제수준과 무관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애초 이 고질의 병인은 빈곤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라면 부정부패를 얼마든지 격리시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과거에는 사회의 미성숙이 방해 요인이기도 했다. 각 분야의 민주화가 정착해 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수술도 견딜 만큼 건강해져 있고 시민의식은 키가 자랐다.

이런 호조건 아래서 이 정부가 실패한다면 영원히 실패하기 쉽다. 첫 호기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호기가 아니다.

현 정부의 가상했던 의욕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과거지향성의 해법에 잘못이 있다.

김영삼정부가 등장했을 때 국민치고 크든 작든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어떤 형태로든지 부정부패와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뇌물을 받는 것만 죄가 아니라 주는 것도 죄다. 그만큼 사회 전체가 공범이었다. 대부분의 국민이 죄인이라면 어차피 전국토를 감옥화할 수는 없다. 구시대를 문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모든 사람의 과거를 다 물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사회는 별로 겁먹지 않았다. 일부를 들추어내봤자 표적수사일 수 밖에 없고 형평에 어긋나는 것이다. 정부의 의지는 신뢰를 잃었다. 정부의 호언은 엄포로 얕잡아 뵈었다. 결국 비리의 독소는 그대로 잠복한 채 틈틈이 노출되어 정부의 위협을 비웃어 오고 있는 것이다.

사이렌을 불었어야 옳았다. 일정한 범위 이하의 부정에는 사면령을 내려야 했다. 그것이 구시대의 청산이다. 그러고는 야간 통행금지 사이렌 불듯 금지령을 일제히 선포해 앞으로의 위반자는 하나씩 모조리 적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효성이 충분한 경보다. 그래야만 사회는 새로운 시대의 양심으로 무장하게 된다. 묵은 죄가 남아 있으면 새로운 죄를 자꾸 짓게 된다.

정부의 공직자 비리 엄단 경고는 되풀이 듣던 소리라 이제는 공허하게 울린다. 정부 사정의 엄포성은 지난번 총선거의 선거사범 처리 결과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아무리 다짐했자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부정의 씨앗들에게 용기를 더욱 북돋우고 있다. 당연히 뽑아야 할 칼은 고함이 없어야 더 무섭다.

부정부패를 일소할 능력이 없는 정부에 개혁을 맡길 수 없다. 개혁정부의 성패는 이 성전에 달렸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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