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숙한 골목 창가린 카페/6색 줄무늬의 레인보 깃발/애정표현의 ‘자유지대’서울 탑골공원 뒷편 낙원동과 이태원 일대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다. 「쉘부르」 「랭보」 「섬씽」 「프리타임」 「레떼」 「아프리카」 「유토피아」 「버클리」 「좋은 친구들」 「포럼」 「쿨」 「스파르타쿠스」 「트랜스」 「터널」 「째즈」 등 게이바가 밀집해 있다. P극장, L사우나 등도 동성애자들이면 누구나 알만한 명소다.
외부의 시선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곳, 이성간의 사랑만이 통념인 사회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껴안고 입맞춤을 할 수도 있는 「그들만의 천국」. 현재 남자동성애자들의 공간인 게이바는 서울에만 70여개나 된다. 게이바는 하나같이 남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도록 창이 없거나 완전히 가려져 있으며 쉽게 찾기 어려운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색 등 6색 줄무늬의 레인보 깃발이 걸려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78년 샌프란시스코 동성애자 자유의 날 시가행진에 처음 사용된 이래 6색 레인보 깃발은 전세계 동성애자들의 상징이 됐다.
이태원 해밀턴 호텔 맞은편 뒷골목 지하의 S클럽. 외부 네온사인 간판 등은 주변의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다. 안으로 들어서면 60평 남짓한 홀 가운데 정사각형의 바가 있고 레인보기가 걸려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사이키 조명이 눈을 어지럽게 한다.
취재팀이 찾았을 때 40대 초반과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정장차림의 두 남자가 바싹 붙어 앉아 서로 감싸안고 있었다. 몸짓이 자연스러웠고 눈치를 보는 기색도 없었다. 보통 연인들의 데이트 장면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30대 남자가 40대 짝의 목을 휘감고 무언가 속삭이며 귓볼을 만지작거리더니 텅빈 무대로 나가 둘만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태원 소방서 뒤편의 또 다른 게이바 T업소도 인적이 드문 골목안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출입문 왼쪽에 바가 있고 벽을 빙 둘러 4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무대는 널찍했고 벽에는 게이들의 성행위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30대 중반의 게이 커플이 입구 맞은편 구석에 나란히 앉아 한창 데이트중이었다. 이들은 담배를 필 때도 한개피를 나눠 피웠다.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듯 발길이 잦았고 커플로 찾아오는 외국인도 있었다.
동성애자들의 세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탑골공원 주변의 낙원동 일대. 동성애 문화를 「낙원동문화」라고 부를 만큼 이 일대의 동성애 역사는 뿌리깊다. 이 곳에 게이 카페가 하나 둘 들어 서고 동성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다. 특히 동성애자들의 짝찾기 무대로 유명하다. 낙원동 문화는 게이들 사이에서도 질이 낮은, 문란한 섹스와 향락의 문화로 치부된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이 떳떳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짝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아직은 낙원동이 유일하다.
특히 P극장은 동성애자들에게 「살롱」(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극장의 은어)으로 통한다. 이 극장은 좌석이 많이 비어 있는데도 늘 10∼20여명이 뒷쪽에 서서 영화를 본다. 정확히는 영화를 보는게 아니라 「짝」을 사냥하는 것이다. 낙원동 게이카페의 종업원들은 손님들에 짝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직접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기도 한다. 취재팀이 찾아간 탑골공원 뒤편 S카페의 종업원 한명은 자신을 김XX(32)라고 소개한 뒤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서로 소개도 해주느냐고 묻자 『고정 손님들이 100여명이나 되니 좋아하는 스타일을 말하면 거기에 맞춰 짝을 골라 주겠다』고 제의했다. 이태원의 한 게이바 주인 조모씨는 『동성애자들은 주로 낙원동에서 1차를 한 뒤 이태원의 게이바에 들렀다 3차로 여관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성 동성애 모임인 「친구사이」 회원들은 『낙원동의 동성애 문화가 이성애 문화의 매춘이나 퇴폐 향락을 연상시키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동성애 문화의 퇴폐적인 일면만 보고 자생적 동성애 지역인 낙원동 전체를 성적 타락의 구렁텅이로 보거나 동성애자 전체를 변태 또는 비정상적 인간으로 몰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와 에이즈/연관성 없어/감염자 대부분 이성간 성접촉
「동성애자=에이즈 환자?」
동성애는 에이즈 문제가 터질 때마다 거론되고 때로는 동성애자들이 마치 에이즈 확산의 주범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연세대 의대 김준명 교수(내과)는 『동성애 자체와 에이즈를 연관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에이즈는 전염병이기 때문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가 똑같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동성애 자체가 에이즈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의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동성애자들한테서 먼저 발견되고 문제가 됐을 뿐 그들이 에이즈를 발병시키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9월까지 국내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는 총 596명. 이중 성접촉에 의한 감염이 527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감염경로가 동성애인 경우는 112건으로 이성과의 성접촉으로 인한 감염보다 훨씬 적게 나타났다.
동성애 인권운동가들은 『치료의 대상인 에이즈와 성적 선택인 동성애를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성간의 난잡한 성접촉이 오히려 에이즈를 널리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이진동 기자>이진동>
◎“적극적 인권운동 아직은 힘들어요”
『동성애자 단체가 목소리를 높이니까 동성애자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대학생 김준석씨(22)는 올해초 남성 동성애자 모임 「친구사이」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동성애자는 갑자기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어나고 몇몇이 얼굴을 공개하고 있지만 아직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는 『우리 모임은 동성애자의 인권신장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그러나 아직 많은 회원들이 적극적인 인권운동보다는 동성애자들간의 사교모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순간 자신은 물론 가족에까지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 우리 현실』 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동성애자간의 결혼문제를 거론하는 등 「앞서가는 것」은 운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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