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취재하면서 「이 나라가 과연 200여년 동안 민주주의를 해온 나라인가」하는 의심이 인 것은 뜻밖이었다. 그 정도로 제3세계적인 후진성을 미국의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 있었다.96년 대선운동과 거의 동의어가 돼버린 민주당의 로비성 정치헌금 모금사건은 구문이 된 지 오래지만 선거 이후에도 계속 확대돼가고 있다. 이처럼 탈법적인 선거자금 모금행태는 정도만 좀 덜했을 뿐 공화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의 뇌물수수를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지정하려고 덤비는 미국의 또다른 모습이다.
TV광고전도 수준 이하였다. 민주당은 공화당을 「극단주의자」로 매도했고 공화당은 민주당을 「범죄소굴」로 묘사했다.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양당의 흑색선전도 점입가경이었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선거에 써먹기 위해 5만여명의 불법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부정 발급했다』면서 백인 유권자들을 충동질했다. 한편 민주당은 『공화당이 집권하면 의료보장, 의료보호제도가 무너져 버릴 것』이라며 저소득층과 노인층을 자극했다.
이 주장들은 모두 사실이 아닌 허구다. 공포감 조성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상의 「소구효과」를 악용한 경우다. 2차대전 이후 미 공화당이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심을 선거에 이용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화당은 이번에는 공산주의 대신 불법이민자를 표사냥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뉴저지주의 뉴워크시에서는 이보다 더 한심한 소동이 벌어졌다. 현지에서 선거 전날 발행된 일부 신문지 속에서 『투표장에 있는 컴퓨터가 불법 이민자나 범법자, 탈세자 등을 가려내는데 이용된다』는 내용의 전단이 발견된 것이다.
이 사건을 신고받은 뉴저지주 민주당본부는 『이 전단들은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의 투표참가를 저지하기 위한 술책』이라며 공화당쪽에 화살을 돌렸다. 이것이 공화당의 공작인지, 민주당의 흑색선전인지는 즉각 밝혀지지 않았다.
선거에는 으레 흑색선전이 따르게 마련이다. 미국사회의 진정한 건강성은 그들이 1년 가깝게 지속된 선거전 기간에도 정치판에만 휘말려 요동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대통령 임기의 절반도 못넘긴 시점부터 온통 차기 대선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다.
또한 민주·공화 양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탈법사례에 대한 진상규명은 법적 절차에 맡기기로 하고 여야를 떠나 「더 나은 미국의 건설」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면서도 패배의 원인을 상대의 불법 탈법 선거운동으로 돌리는 우리와는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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