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평범한 시민으로미 외교·안보의 양축인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71)과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68)이 7일 사임했다. 성실한 실무형 관료들인 두 장관은 그동안 빌 클린턴 대통령을 보좌하며 미국의 「세계정책」을 주도해왔다.
특히 지난 4년간 대외정책을 책임져온 크리스토퍼는 외교경험이 부족한 클린턴이 탈냉전시대의 불안정한 국제정세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등 충실하게 장관직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임기중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무대뒤에서 조용히 조율하는 스타일로 업무를 추진해왔다.
북한은 로버트 갈루치 대사, 아이티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보스니아는 리처드 홀브룩 전 국무부차관보, 북아일랜드는 조지 미첼 전 상원원내 총무가 각각 맡아 각종 현안의 해결점을 찾도록 했다. 이때문에 특사들은 매스컴으로부터 각광을 받았지만 그 자신은 추진력이 없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는 사임회견에서 『같은 시간대에서 몇주간 지내면서 라이프 사이클이 시계와 똑같이 움직이는 지를 알고 싶다』고 말할 만큼 역대 국무장관중 가장 분주하게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110만㎞의 출장 신기록을 세웠으며 임기중 심혈을 기울였던 중동평화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 지역을 20여회나 들락거렸다. 그 결과 이츠하크 라빈 고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비록 중국과의 관계는 인권문제로 틈이 벌어졌지만 러시아와는 긴밀히 협조, 핵 및 대량파괴무기 확산을 방지하는데 기여했다.
남가주대와 스탠퍼드대 법대를 나왔으며 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때 경찰의 문제점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맡기도 했다. 퇴임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변호사 생활을 재개할 계획이다. 그러나 내년 1월20일 클린턴행정부의 정식 재출범때까지 현직에 머무르며 차기국무장관 후보 등에 대한 건의를 비롯, 각종 현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94년 2월 레스 애스핀의 후임으로 국방장관이 된 페리는 국방분야에 질서와 규율을 유지하고 사기를 진작시켜 군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스탠퍼드대 수학과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를 나온 수학박사. 군수분야의 전문가로서 국방예산감축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해 국방부관리들로부터 점수를 후하게 받았다.
또 지역분쟁과 관련, 미군의 개입에 대한 범위와 한계를 효과적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군 지도부와의 유대강화로 핵전쟁의 가능성을 줄였다는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6월 사우디아라비아 미군기지 테러사건으로 해외 주둔기지에 대한 관리소홀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들었으며 의회와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 개발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투자금융회사 부사장, 스탠퍼드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지미카터 대통령 때는 국방차관을 지냈다. 앨 고어 부통령의 추천으로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왔으며 국방부장관을 지냈다.<이장훈 기자>이장훈>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