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 돔에 금이 가고 백화현상이 생겼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화강암 부조물에 왜 금이 가며 백화현상은 또 뭔가.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만든 석굴암 자체에는 별 이상이 없고, 그 위에 설치한 콘크리트 돔이 낡아 균열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단은 안심이 되지만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지붕 역할을 하는 돔에 금이 갔다면 빗물이 새고 습기가 차서 이 빼어난 민족의 보물을 길이 보존하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석굴암의 영구보존 문제를 신중히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때맞추어 터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석굴암 외부에 콘크리트 돔을 만들고 주변을 정비한 것은 조선총독부 사람들이었으니 이제 첨단기술과 과학을 동원해 우리 손으로 보존대책을 세울 때가 되었다.
석불사로 불렸던 석굴암은 1770년께 장부윤이 중건한 이후 한동안 폐사상태였던 것 같다. 한국문화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1889∼1961)가 1919년 일본의 「예술」지 6월호에 기고한 「석굴암 조각에 대하여」란 글을 보면 경주의 한 우체부에 의해 발견된 석굴암은 천장일부가 무너져 불상 연대 일부가 깨지고, 흘러내린 돌과 흙으로 연대가 파묻힌 상태였다. 불국사―석굴암간에는 변변한 길도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1913년 석굴암 중수에 착수, 1915년 완공했다. 이 때 콘크리트 돔을 설치하고 흙으로 처리됐던 외부에 돌담을 쌓아 꼭 터널입구처럼 경관을 망쳐버렸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석굴암 보존책을 마련해야 한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없었던 기둥까지 입구에 찾아 세운 총독부의 석굴암 중수를 「새로운 훼손」이라고 평했다.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 위대한 신라 예술작품의 옛모습을 되찾아 길이 후세에 물려주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책무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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