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물질적 풍요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온갖 타락상의 백과사전처럼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가 겪는 이러한 인간성 상실의 문제는 대부분 사회과학적으로만 관찰·분석이 되어왔다. 잘해야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치부돼 초등학교 시절의 「바른생활」교과서에 나오는 대목을 떠올리며 한숨 지을 뿐이다.그런데 건축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마음의 병은 「마을」이 사라진 후유증이라 진단하게 된다. 마을은 한 사람이 주변환경을 마음속에 담아낼 수 있는 크기의 공간단위이다. 마을은 농촌사회에서 강과 산과 논두렁으로 구획되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단위였다. 마을 속에서 사람들은 같이 사는 법을 배웠고 일상을 정으로 가꾸는 법도 배웠다.
사람들은 서울에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차도와 큰 골목, 구멍가게와 작은 골목으로 새로 마을을 만들어 나갔다. 마을은 서울이라는 기형적 거대도시를 그나마 살만한 곳으로 지켜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삶의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휴가병을 맞는 어머니의 마음같은 공간이었다.
마을은 물리적으로만 우수한 공간이 아니다. 마을은 한 사회단위가 지니는 삶의 위계질서를 담는 문화적 공간이다. 이렇기 때문에 마을이 사라져 가면서 어른의 개념과 이웃의 개념이 함께 사라져 갔고 결국에는 삶의 총체적 질서가 붕괴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젊은이가 노인을 때리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극단적 패륜은 마을이 없어지면서 앓기 시작한 마음의 병이다.
본래 마을은 화려하지도 않고 높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그러나 마을은 이웃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자취를 담아내는 묘한 기능을 가졌다. 마을에는 일상의 체취와 궤적이 쌓여 생긴 잔잔한 여운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앨범이나 일기장같은 소중한 무게를 지닌다. 큰 것, 깨끗한 것, 바둑판처럼 정리된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건축문화를 되돌아볼 때이다. 인위적인 대형건물이 「마을」의 정서까지 추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도덕적 타락과 마을이 사라지는 현상이 겹쳐 일어나는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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